방송통신조합, 통합배선반 업체간 불법 하도급 및 불공정거래 만연
조합과 회원사간 상호 결탁, 이권 챙겨...공공기관 부실납품 우려도
불법 하도급 통해 사실상 입찰 수급사업자 조합이 결정...이 과정서 '뒷돈' 오가
직생확인 과정서 불공정 피해 업체 새로운 조합 결성
중기부, 직생확인 심사권한 등 부처로 가져오는 방안 검토중

100여개 회원사를 둔 한국방송통신산업협동조합 홈페이지 메인 화면.
240여개 회원사를 둔 한국방송통신산업협동조합 홈페이지 메인 화면.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한국방송통신산업협동조합(이사장 주대철, 이하 ‘방송통신조합’)이 통합배선반 사업 과정에서 조합원사들과 함께 불법 하도급 및 불공정거래를 공공연히 자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통신설비의 하나인 통합배선반은 중소기업자간경쟁품목으로서 해당 제품을 직접생산하는 업체(직접생산확인증명서 보유)만이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하도급이 금지돼있다. 그럼에도 방송통신조합의 회원사들은 공공기관으로부터 통합배선반 설비 입찰을 따낸 뒤 이를 제3자에게 하청을 주는 불법 하도급 행위를 오랜 기간 지속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조합은 회원사간 입찰경쟁에 끼어들어 특정업체가 입찰을 따더라도 다른 업체에 다시 하도급을 주게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수급사업자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등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 조합의 회원사인 A업체 L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통합배선반 설비를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불법 하도급을 행하지 않은 업체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만연해있다”며 “조합과 조합원사들이 서로 결탁이 돼 거미줄같이 이권에 얽혀있다보니 어느 누구 하나 불법인줄 알면서도 시정할 생각조차 않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통합배선반 업체에 대한 직접생산확인(직생) 과정에서도 ‘불공정’과 ‘날림’ 승인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통신조합의 또 다른 업체 K대표는 “직생 재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종전과 똑같이 리뉴얼 대로 준비를 했는데 조합에서 특정 장비를 구비하라며 불승인을 해, 비싼 돈을 들여 장비를 구매하고 다시 승인신청을 했으나 또다시 불승인을 하는 등 다른 업체들의 사례와 비교할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수차례에 걸쳐 승인을 해주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중기중앙회에 신청을 해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K대표는 “그 전까진 승인을 잘 해주다가 이사장 선거를 계기로 조합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방송통신조합은 올해 2월 선거를 통해 18년간 이사장을 맡아온 주대철 이사장을 재선임했다.)

이처럼 방송통신조합의 직생제도 운용에 불만을 품은 일부 업체들은 비회원사들을 결집해 지난 9월 새로운 조합(한국유무선통신공업협동조합)을 출범시켰다. 60년 역사에 자체 건물까지 보유한 기존 조합을 두고 신생 조합을 결성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 참여자들은 직생승인의 불공정성을 맨먼저 꼽았다.

직생 확인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기중앙회에 위임하고 중앙회가 이를 다시 조합에 위임해 운영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직생확인이 운용되는 과정에서 불공정 시비가 이는 것은 물론 사실상 눈속임으로 직생심사를 통과하는 날림승인까지 이뤄지고 있어, 중기간경쟁제품지정제도의 의미마저 퇴색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업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보호가 필요한 품목에 대해 공공판로를 열어줄 목적으로 도입된 해당 제도가 법규를 무시한채 조합을 중심으로 업체들끼리 돌아가며 이권을 나눠갖는 공인된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업체의 직생 여부 확인을 위해선 조합이나 중기중앙회 담당직원이 현장을 방문해 생산 공장 및 시설, 생산인력 등을 확인하게끔 돼있다. 하지만 몇 개의 부품을 사다가 조립 생산하는 통합배선반 설비공정의 단순한 특성상 직생 여부를 심사받는데 있어 몇가지 기준만 따르면 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주로 가격이 싼 중국산 부품을 사서 서울 등지의 전문업체에 의뢰하면 조립까지 해준다”며 “이렇게 제품 10여개를 샘플로 만들어 회사명을 새겨 현장심사 당일 필요인력 등을 갖춰 확인을 받으면 된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직생승인을 받은 업체엔 공공기관 입찰자격이 주어지는데 입찰을 따내더라도 직접생산을 통해 납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것이 조합의 개입 하에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모든 과정이 눈속임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 조합의 주대철 이사장은 이같은 불법 하도급을 자행한 사실이 적발돼 지난 5월 중기부로부터 직생 취소 처분을 받았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방송통신조합) 통합배선반 업체들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불법 하도급을 행하고 있어 이 사실이 문제화되면 대다수가 걸려들 수밖에 없어 조합은 물론 회원사들이 서로간에 약점을 틀어쥔 관계로 조합 내부의 여러 문제에 대해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낼 생각을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중기간경쟁품목과 직생제도를 이용한 이같은 묵인된 불법이 저질러진지 오래됐으나 조합 차원에서 그 어떤 시정노력도 하지 않아 그야말로 도덕 불감증”이라며 심각성을 표시했다.

또 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입찰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합이 중간에 개입해 하도급을 주게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수급사업자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고, 이 과정에서 조합 관계자가 일정비율의 ‘커미션’을 개인적으로 챙기는 풍토까지 조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공식적으로 조합은 회원사의 사업계약에 대해 건별로 2%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통합배선반 업계의 이같은 폐단은 최근 열린 산자위의 중기부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이 돼 일부 의원이 중기부에 시정방안을 요구한 상태다. 이에 중기부는 중기중앙회와 조합이 위임받아 운영하고 있는 직생확인 심사업무를 부처로 가져오는 방안 등을 검토중에 있다. 이와 관련해 중기부 관계자는 “다가오는 연말쯤 결론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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