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포스트 코로나’와 ‘포스트 자본주의’
[칼럼] ‘포스트 코로나’와 ‘포스트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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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만 객원 편집위원(한서대 교수)
박경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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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가 회자되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다시 ‘코로나’ 이전(Pre)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건 아마도 새로운 시대적 코드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새롭게 기획되어야 할 ‘포스트(Post) 코로나’의 삶을 겨냥한 온갖 담론과 사변들이 넘쳐나는 현실이다. ‘포스트 코로나’에 걸맞은 ‘포스트 자본주의’가 이야기되는가 하면, 마침내는 수구적 자본주의 교의를 뛰어넘는 탈근대적 ‘계몽자본주의’까지 호출당하고 있다. 이는 새삼 “왜 디지털혁명인가?”라는 원초적 질문과도 겹친다.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포스트 코로나’가 포용할만한 디지털혁명에 대한 성찰이라고 해야겠다.

디지털혁명의 아포리즘은 분명 20세기 기술자본주의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AI자동화나 나노기술, 합성생물학 따위가 제 아무리 신통한 방식으로 인간의 영역을 재구성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그러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자본의 실천방식은 어떠할까. 분명 재화나 경제적 객체의 재료부터가 다를 것이다. 이미 디지털 경제가 보여주듯, 인간친화적 동기의 것일수록 가장 값어치있는 재화가 된다. 소소한 경험이나 아이디어, 삶을 관통하는 코드와 정보, 나와 타인이 공유하는 이미지, 사유와 사고체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힘, 그런 것들이 디지털 경제를 구성할 것이다. 곧 ‘비물질적 부가가치’다.

이는 자원과 가공, 유통, 소비로 이어지던 전통적인 생산체제에 편입되지 않았던 비물질적 생산물들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이를 ‘외부경제’ 혹은 ‘불경제’(不經濟 ․ diseconomy)라며, 사실상 ‘경제같지 않은 경제’라며 경멸했다. 그러던 것이 이젠 실재와 가상현실을 넘나드는 무한한 상상계(界)가 펼쳐지는 세상에서, 이들이 생산과 경제의 핵심 테마로 부상할 조짐이다. 예전의 노동, 자연과 같은 물질적 생산요소와는 달리, ‘인간’을 기반으로 한 창의와 자율성이 생성과 생산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용없는 성장이나, 많은 사람들을 오로지 무용한 ‘소모품’으로 여기는 기존 자본의 태도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오늘에 되살린 ‘슘페터’의 예언도 주목할 만 하다. 그는 반세기 전 미래 자본주의의 병증으로 ‘기업가 능력’의 쇠퇴를 꼽았다. 그가 말한 ‘기업가’ 정신은 “새로움을 도입하고 창조의 즐거움에 의해 추동되는 혁신가의 자세”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의 일론 머스크나 마크 저커버그, 팀 쿡과 같은 ICT기술의 선구자들이 과연 ‘진정한 기업가’인가는 따져볼 일이다. 심하게는 기업의 얼굴로 새 모드의 상품을 내놓고, 그 성공적 판매에 판돈을 건 세일즈맨이자 위험을 감수한 글로벌 투기꾼이라는 비야냥을 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묵시록적인 ‘붕괴론’이나, 막시즘의 계급투쟁식의 저주는 폭넓은 공감을 사기 어려울 것이다. 생산과정에 대한 공적 통제, 즉 사회주의나 기든스의 ‘제 3의 길’과 같은 사민주의 전략도 답이 되기엔 부족하다. 이들 역시 국가 관리란 점만 빼면, 궁극적으론 부의 재분배에 골몰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흡사한 모순을 잉태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포스트 코로나’에 걸맞은 ‘포스트 캐피털리즘’은 어떠해야 하는가? 확신하긴 어렵지만, 지금껏 모든 경제 이데올로기가 부대껴온 ‘부의 분배’, 그 메커니즘을 뛰어넘는 근원적 생성의 메커니즘이 출현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바, 각자 삶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이를 생산 요소로 녹여내는 것이다. 새로운 자본 역시 ‘인간’을 작동원리로 삼아야 하고, 경제학을 삭막한 수학 공식으로 변질시킨 지난 세기의 오류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거창하게는 ‘왜 사느냐?’는 물음에 답할 만한 실천적 삶의 방식을 생산공정에 이식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는 적어도 ‘포스트 자본주의’의 조건임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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