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구 K&K트레이드 회장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40만 달러 기부
베트남, 아직은 기회의 땅...‘호치민 사상’ 꼭 익혀야
온라인 쇼핑몰 'K-Mall'로 승부수

최근 막을 내린 제19차 세계한상대회 참석차 서울을 찾은 베트남의 대표적인 한인 사업가 고상구 K&K트레이딩 회장을 지난 19일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만났다. [박철의 기자]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베트남 정부에 돈을 건네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10만달러를 들고 한인회를 찾아가 한인회 이름으로 현지 각 지역 방역 보건당국에 구호물자와 함께 생필품을 사서 기증하라고 조언했지요. 그게 통했는지 지금은 교민들 대다수가 백신을 맞았습니다. 아마 현지인의 백신 접종률은 20~30% 수준일 것입니다.”

최근 서울 잠실 롯데에서 열린 제19차 한상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고상구 K&K트레이딩 회장의 말이다. 고 회장은 베트남 교민 사회의 상징적인 인물로 촉망받는 한상(韓商)의 대표 주자다.

한때 코로나19 청정지역으로 부상했던 베트남도 예외 없이 코로나로 신음을 앓았다. 특히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은 한국 교민이 사망하는 등 코로나 후유증으로 적지 않은 홍역을 치뤘다. 이 과정에서 고 회장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고 회장은 베트남 조국 전선에 17만 달러(현금 10만 달러, 구호물자 7만 달러)를 기부했다. 중소기업을 하는 고 회장의 입장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돈만 벌고 나간다는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 않느냐”며 “한발 앞선 기부가 베트남에서 선순환을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했다. “베트남 진출 국내 대기업이나 금융권 등도 많지 않느냐”는 질의에 고 회장은 “생각만큼 기부활동이 미미했다”며 “기업이 현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런 가운데 고 회장의 또 다른 고민은 교민들의 ‘안전’이었다. 교민들이 백신을 맞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베트남은 물론 한국 정부에서 조차 교민들의 안전은 후순위였다. 결국 고 회장은 10만 달러를 손에 쥐고 호치민 한인회를 찾아가 “한국 교민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현금보다는 방역 당국에 물품을 기증하는 방법을 선택하라”고 주문했다.

호치민에서만 3명중 1명이 확진자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위기 속에서 한국 교민들에게 백신접종의 기회를 얻어내는 반전의 드라마를 썼다. 당시 베트남의 의료시스템은 붕괴되고 중증 환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해야 할 정도였지만 현재 한국 교민의 백신 접종률은 거의 70~80%에 육박한다. 당시 교민사회 역시 코로나로 인해 여행업이나 식당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치명타를 입었다. 여기에도 고 회장의 손길이 적지 않게 미쳤다. 2019년 베트남을 찾은 한국 관광객이 420만명인 점을 감안할 때 관광업에 종사하는 교민들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에 관광업에 종사하는 교민들 대다수가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고 회장이 베트남 정부와 한국인 사회에 내 놓은 금액은 40만달러, 약 5억원 가량의 통큰 기부를 했다.

2018년 100대 브랜드 선정

이날 베트남에서 돌아온 고 회장의 표정은 밝았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해 보였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한국 중소기업에게 희망의 땅이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체수 9000여개, 교민 수만도 25여명에 이를 정도로 한국경제에서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베트남은 희망과 함께 절망의 땅이 뒤섞여 있다. 베트남 대사관과 교민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현재 베트남 교민 인구는 코로나 이후 10만여명이 보따리를 싸고 이탈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봇물처럼 중국행을 선택했다가 지금은 탈중국 현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느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청도에 한때 교민이 10만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2~3만명에 불과할 정도로 교민사회가 완전히 붕괴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와 있는 기업들도 언젠가는 탈중국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아직 베트남은 기회의 땅임에는 분명합니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현지화가 생존비결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베트남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6~7%정도였으나 올해는 4%정도로 떨어졌지만 아직은 희망이 보인다는 고 회장. 그가 창업한 K-MARKET(케이마켓)은 2018년 베트남 100대 브랜드에 선정될 정도로 교민은 물론 베트남인들에게 호감도가 높다. 베트남 전역에 120여개 마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산 제품 3만점을 취급하고 있다. 여기에 호치민‧하노이‧다낭 3곳에 대형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물류사업에 뛰어든 것도 마트와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물류사업은 IT가 결합되어야 함은 불문가지. 특히 식품의 경우 냉동 냉장기술이 중요한 콜드체인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기류는 0도~2도, 과일 등은 5도, 야채는 8도 미만 등을 자동적으로 체크에서 신선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그의 설명이다. 그의 목표는 ‘일등기업이 아니라 일류기업’이다. 동남아시장에서 ‘한국 상품= K마켓몰’이라는 인식을 심겠다는 포부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 등 글로벌 자본이 투자된 기업체들과 경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배우다

그는 2002년 하노이시 쟝보(Ging Vo)전시장에 한국형 백화점인 코리아타운을 오픈했지만 9개월 만에 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베트남을 그저 한국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만만한 시장’으로 본 게 패인이었다. 결국 백화점 사업을 하면서 히트를 쳤던 인삼제품으로 재기에 성공, 2006년 ‘K마트’라는 브랜드로 재창업해 오늘에 이른다. 그가 최근 들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은 바로 온라인 쇼핑몰인 K-Mall이다. 이미 2~3년 전부터 준비해왔다. 2000년대 초 한국형 백화점을 하면서 실패했던 경험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미래에 대한 트랜드에 대비하고 현지화를 하지 않으면 곧바로 퇴출된다는 사실을 그때 경험한 것이 약이 됐다.

호치민 한인회장과 18차 한상대회장을 역임하면서 차세대들에 대한 그의 관심도 높다. 차세대들이 베트남 진출을 위해 꼭 알아야 둬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거침없이 ‘호치민 사상’을 꺼냈다. 즉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마라, 미래를 향해 나가라’는 호치민 사상이 바로 ‘실용주의’정신이라는 설명이다.

“동남아 국가 가운데 베트남처럼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가 없습니다. 지도체제에 대한 권력이양도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지고 있고 정치보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패에 대해서는 단호합니다. 베트남은 프랑스로부터 90년 이상 지배를 받았지만 미국과의 전쟁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2차대전 후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아픈 역사를 잊지는 말되 과거가 미래로 가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호치민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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