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고'와 '유동성 잔치'
[칼럼] '금고'와 '유동성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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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희 부국장<br>
황복희 부국장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최근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금고제조업체를 찾았다. 그곳에서 의외의 사실을 듣게 됐다. 일부 특수업종을 제외하고 상당수 기업들은 코로나19로 매출이 반토막났다며 아우성인데, 이 업체는 지난해 매출이 두자릿수나 늘었다는 것이다. 방역용품 관련 업종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대면 업종도 아닌데 말이다. 코로나19 사태에 ‘금고’가 조금 과장해 불티나게 팔린다는 얘기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비결이 뭔가요?”

이 회사의 국내영업본부장은 “코로나19로 해외수출이 막힌 대신에 국내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며 “저금리 추세 등으로 현금보유 고객이 늘어났고, 금고가 현금자산이나 금괴 등 귀중품을 보관하는 공간에서 꼭 가치가 높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소중한 것을 보관하는 장소로 트렌드가 바뀐 점 등이 배경”이라고 전했다.

아이들 탯줄이나 추억할만한 사진들, 젊은이들의 경우 일기장을 보관하는 ‘가구’같은 용도로 금고가 쓰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금고의 콘셉트가 바뀌고 있는 것에 포착해 이 회사는 소파 등 가구 브랜드와 콜라보 시도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기자에겐 이같은 ‘금고의 변신’ 보다 한층 흥미롭게 다가온 사실이 있다. 금고 판매량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은 무엇보다 시중에 ‘돈이 넘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 코로나 위기 이후 정부가 중심이 되어 푼 막대한 유동성이 상당부분 시중의 금고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얘기로 들렸다.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 속에서 은행 예금이 과거처럼 메리트가 없는 데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적인 특수성 또한 가미되어 금고 판매량이 급증한 것으로 추론된다.

아울러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로 사실상 경제행위의 팔다리가 묶이다시피한 상황에서 시중의 유동자금이 마땅히 갈 곳(투자처)을 찾지 못하고 금고 속에 들어앉아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정부가 마치 숨통을 틀어막을 것 처럼 각종 규제를 쏟아냈음에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반작용처럼 부동산시장 만이 유일하게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을 따름이다.

코로나 터널을 지나면서 시중의 유동자금이 증가한 것과 함께 정부도 가계도 유례없는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국가부채는 현 시점 기준 940조원으로 국민 1인당 1819만원, 가계부채는 1805조원으로 1인당 350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비율은 GDP 대비 97.9%로 선진국 평균인 73.2%를 훨씬 상회한다.

실제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 대출(지난해 4월 이후)만 하더라도 지난 6월말 기준 204조4000억원이 금융권을 통해 풀려나갔다. 이와 별도로 지난해 5월 1차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시작으로 2~5차 선별 지원, 오는 9월 국민 88%에게 지급되는 국민지원금(총 11조원), 10월말로 예정된 소상공인 손실보상(1조8000억원) 등 정부의 코로나지원금만 약 30조원에 달한다. 3,4차 추경편성이 이어지면 지원금은 더 늘어난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이 지난 26일 기준금리를 연 0.75로 0.25p 인상했다. 2년9개월만의 인상이다. 때를 같이해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이 대출 조이기에 나서자 막차에 올라타려는 이른바 ‘패닉 대출’이 한꺼번에 몰리고 있다.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연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예고하는 등 미국의 금리인상도 시점이 변수이지 시장에선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이같은 금리인상 움직임과 달리 재정정책은 여전히 '확장기조'다. 정부는 31일 코로나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내년도 국가예산을 '초수퍼 예산'인 604조4000억원으로 편성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예산은 2017년 400조7000억에서 매년 늘어나 2021년 558조원, 내년에는 600조원을 넘어서 지난 5년 사이 무려 50%(200조원)가 증가했다. 이로써 내년도 국가채무는 1000조를 넘어서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2%까지 오를 전망이다.

경제는 쉽게 말하면 ‘돈의 흐름’이다. 돈의 흐름이 정상적이면 일단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렇치않고 어딘가에 고이거나 투자 등 가야할 곳에 가지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장기적으로는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린다. 문제는 금융권의 최근 금리 인상과 대출축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발 ‘유동성 잔치’는 금새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데 있다. 확진자가 여전히 네자리 숫자를 달리는 등 코로나 위기의 터널은 안타깝게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데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형 돈풀기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상황에서 ‘돈풀기’는 어느정도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않다. 하지만 유동성이 갈 곳을 잃고 시장에 넘쳐나는 현 시점에 양적 측면 보단 질적 측면에서 돈이 정작 가야할 곳에 제대로 흐르고 있는지, 정부와 금융당국 입장에서 좀 더 디테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당연한 얘기이나 포퓰리즘은 망국(亡國)의 지름길임을, 굳이 중남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시점에서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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