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해고 불구, 고용지원금 계속 받으려 ‘자진퇴사’ 강요
직장 괴롭힘 등 퇴사 유도, ‘자진퇴사’ 가장, 실업급여 못받게

중소기업들이 밀집한 수도권의 한 산업단지 풍경으로 본문기사와는 관련없음.
중소기업들이 밀집한 수도권의 한 산업단지 풍경.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해고를 시키면서도 고용지원금을 계속 받기 위해 ‘자진 퇴사자’로 처리해 당사자가 구직급여(실업급여)를 못받게 하거나, 퇴사 처리를 한 후 구직급여를 받는 대신 ‘무급’으로 출근하게 하는 등 부당한 처사를 일삼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업의 ‘갑질’에 시달려온 중소기업들이 정작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를 상대로 ‘병’에 대한 ‘을질’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제보에 근거해 9일 공개한 부당행위 사례에 따르면 이처럼 해고와 퇴사, 구직급여를 둘러싸고 직원들에게 부당노동행위를 하거나 ‘착취’나 다름없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악덕 고용주들은 우선 ‘이직 사유가 수급자격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한 구직급여의 지급 조항을 악용하기 일쑤다.

일단 구직급여를 받으려면 폐업이나 해고 등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는 내용의 이직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경우 사업주는 노동자가 퇴사하면 피보험자격상실 신고를 동시에 하게 된다. 노동자는 구직급여를 신청하기 전 사업주에게 이직확인서 발급을 요청할 수 있고, 요청을 받은 사업주는 10일 이내에 발급해주어야 한다.

직장갑질119는  “이런 규정을 악용한 일부 사업주들이 많다”며 “실제로는 해고, 권고사직 등의 비자발적 사유로 퇴사했지만, 사업주가 이직 사유를 거짓으로 기재하여 구직급여를 받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또 구직급여 수급을 아예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을 동원해 사실상 퇴사를 종용하거나, 정부로부터 받아온 고용지원금 등을 받기 위해 “그냥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것으로 처리하겠다”며 구직급여 수급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갑질119는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자발적으로 퇴사한 경우 문제가 된다”고 했다. 구직급여를 받으려면 경찰, 노동청, 회사 중 한 곳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설사 “괴롭힘이 있었다”고 자기가 다니던 회사에 신고를 해도 회사측에서 시늉만 하는 부실 조사로 그치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구직급여를 수급할 수 있게 해 줄테니 다른 법적 권리를 포기하라”거나, “구직급여를 수급하는 동안 무급으로 출근하라”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이는 사업주들도 적지 않다.

직장갑질119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원칙적으로 비자발적 퇴사자에게만 수급자격을 인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발적 퇴사자를 포함한 모든 퇴사자에게 수급자격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재정 형편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그 방안을 검토하되, “세 가지 제도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우선 이직확인서 작성 권한을 노사에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직 사유가 거짓으로 기재됐을 경우 노동자가 이를 정정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이는 매우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사업주의 일방적인 거짓으로 발생하는 불이익을 고스란히 노동자가 부담하는 현행 제도는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직확인서 작성 권한을 노사 양측에 각각 부여하고, 만약 양측의 내용이 불일치할 경우 그 입증책임을 사업주가 부담하도록 하여 불명확한 부분을 직접 소명할 것을 제시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정황이 담겨 있는 녹음파일이나, 정신과 진료 기록 등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추정할 만한 소정의 자료만 갖춰진다면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구직급여 지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고용지원금 중단 사유에 ‘자진 퇴사 강요’ 등을 추가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지원금 혜택을 받는 사업주 중 인위적 고용조정을 피하기 위해 사실상 권고사직이나 해고처럼 비자발적 사유로 퇴사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게 현실이다. 그러고는 자발적 퇴사로 이직 사유를 거짓 기재하거나,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하곤 한다. “이러한 ‘꼼수’가 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지원금 지급 중단 사유에 자진 퇴사 강요 등의 사항을 추가해 페널티를 부여해야 할 것”이라는게 직장갑질119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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