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 휴머니즘을 찾아서- 김동연의 '아버지와의 대화'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지난해 8월 (사)유쾌한반란이 축산농가의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도 이천의 한 양돈농가를 방문한 현장에 김동연 전 부총리가 함께 한 모습.
지난해 8월 (사)유쾌한반란이 축산농가의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도 이천의 한 양돈농가를 방문한 현장에 김동연 전 부총리가 함께 한 모습.

“아버지는 최고였습니다. 사랑합니다”

김동연은 여느 부모처럼 한참 자라나는 두 아들에게 공부, 정직, 약속 지키기, 규칙적이고 검소한 생활 등 적지 않은 것을 요구했다. 어렸을 때는 혼을 내기도 하고 매를 든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구김살 없이 잘 자라주었다.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큰 아들은 농구도 무척 잘했다. 중학교 때는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기도 하고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는 NBA농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일 정도로 농구를 좋아했다. 매사에 책임감도 강하고 배려심이 많아 학교에서 늘 인기 ‘짱’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물론, 친구의 부모들조차 큰 아들을 좋아했다. 그런 큰 아들에게 김동연은 늘 자신이 걸어왔던 것처럼 생활비마저 타이트하게 보내줬다. 근검하게 사는 습관을 길렀으면 하는 아버지의 바람에서였다. 이런 아버지에 대해 큰 아들은 불만보다는 늘 공직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등 속깊은 아들이었다. 어느덧 아들은 청년이 되어 미국 워싱턴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국제기구인 미주개발은행(IDB)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그러던 어느 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김동연의 가족에게 떨어졌다. 그렇게 건강했던 큰 아들에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찾아온 것이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일 때다. 김동연은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집안 식구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즈음 김동연은 공직생활 31년 만에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에 올랐다. 국무조정실장 승진 뉴스가 아들이 누워있는 병실로 타전됐다.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들은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아버지의 승진을 기뻐하고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야 한다면 그게 자기인 것이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의 배려심이 돋보이던 큰 아들이 아닌가. 그런 큰 아들이 악성 혈액암이라니...

김동연은 믿기지 않는 현실을 눈물로 받아들이면서 큰 아들의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신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재산도, 지위도,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겠다고 서원(誓願)했다. 그의 눈물겨운 서원에도 불구하고 신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차도가 없자 큰 아들은 자가이식과 타인의 이식을 번갈아가며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나섰다. 부자지간의 골수는 원래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동연은 처음부터 자신의 골수가 이식되면 기적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며 나섰다. 이틀에 걸친 골수이식 대수술을 마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적은 없었다.

김동연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아버지가 잘못했다. 용서해달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울면서 고백했다. 이런 아버지에게 아들은 “아닙니다, 아버지가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짧은 생애를 마쳤다. 2013년 10월 17일이다. 큰 아들이 공부할 때 조금 나은 기숙환경,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먹었더라면 혹시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통한의 눈물을 훔치고 또 흘렸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누지 못했던 공백을 두 아들과 나누고 싶었던 김동연. 그래서 가능한 한 두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대부분 훈계조였고 주제도 주로 꿈과 열정, 세상 살아가는 방법, 성공같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김동연은 큰 아들이 떠난 뒤에서야 대화 주제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고 후회를 했다.

“너무 공부에 신경 쓰지 마라, 그만하면 됐다. 일류 대학 안 나오면 어떠냐, 성적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네 착한 마음씨가 더 소중하구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소중한 게 많단다. 네가 하고 싶을 것을 찾아라.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 왜 이런 이야기들은 아껴두었는지 하는 후회가 물밀듯이 듭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빨리 이별이 올 줄을요. 이렇게 잔인한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을요.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마음속으로 그러지 못했습니다. 본다고 하면서 정작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보이는 것만 봤습니다. 참회합니다. 그 미련함, 그 바보스러움, 그 고집을요.”<'있는 자리 흩트리기'/김동연 지음>

25개월간의 투병 끝에 그렇게 먼 길을 떠난 뒤, 아들의 대학친구들이 김동연에게 찾아왔다. 큰 아들이 다녔던 워싱턴 대학의 교정에 기념벤치를 설치하는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고...

김동연은 친구들과 별도로 가족벤치도 설치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에서도 허락을 해줘 워싱턴대학 교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인 쿼드(Quad)와 단과대학 건물 입구에 벤치가 각각 설치됐다. 이후 큰 아들이 농구를 하던 대학 실내체육관 정문 바로 앞 화단 옆에 세 번째 벤치가 들어섰다. 큰 아들의 성격대로 벤치를 통해 '남은 사람들이 편하게 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김동연이 2013년 큰 아들을 가슴에 묻고 난 6개월 뒤 300여명이 넘는 어린 생명이 차디찬 바다에 잠기는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그는 당시 중앙일보에 ‘<김동연의 시대공감> 혜화역 3번 출구’라는 글을 실었다.

“이번 사고로 많이 아프다. 어른이라 미안하고 공직자라 더 죄스럽습니다. 2년여 투병을 하다 떠난 큰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데 한순간 사고로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니 더 아픕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그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분들 입장에서 더 필요한 것을 헤아려는 봤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이번 희생자 가족들도 견디기 어려운 사연들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말 않고 그저 따뜻한 허그(hug)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들에게 닥친 엄청난 아픔의 아주 작은 조각이나마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그분들의 힘든 두 어깨를 감싸며 전하고 싶습니다.”   <계속>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주요 이력

▲덕수상고·국제대학교(現 서경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시간대 대학원 정책학 석·박사 ▲제26회 행정고시·제6회 입법고시 합격(1982) ▲기획예산처 사회재정과장·재정협력과장(~2002)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2002) ▲세계은행 선임정책관(2002~2005)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2006~2007)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2008~2009)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실 국정과제비서관(2009 ~ 2010) ▲기획재정부 예산실장(2010~2012.2) ▲기획재정부 제2차관(2012.02~2013.03) ▲국무조정실장(2013.03~2014.07)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2015.02~2017.06)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2017.06~ 2018.12) ▲ 現 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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