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에세이 7]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③... 가슴으로 쓰는 사모곡
[인물 에세이 7]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③... 가슴으로 쓰는 사모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절의 시대, 휴머니즘을 찾아서-
김동연의 '아버지와의 대화'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2월10일 이임식후 배낭을 멘 모습으로 정부서울청사를 떠나고 있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2월10일 이임식후 배낭을 멘 모습으로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정부서울청사를 떠나고 있다.

큰아들 백혈병으로 잃는 등 단장의 아픔 겪기도

“저의 어머니는 47년 전 서른둘의 나이에 혼자가 되신 뒤 저와 세 동생들을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살면서 얻은 저의 작은 성취의 모든 뒤안길에는 자신의 삶이라곤 거의 없었던 어머니의 희생이 곳곳에 배어 있음을 저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있는 자리 흩트리기'/김동연 저>

김동연은 아주대 총장 취임식 날 그의 어머니를 초대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날 김동연은 오늘이 있기까지 공직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멘토와 미국 유학시절 학문적 영역을 넓혀준 은사님 등 세 사람을 모셨다. 김동연은 아버지와는 12년밖에 못 살았지만 어머니와는 45년을 넘게 살았다. 일찍이 직장생활과 가장 노릇을 했던 탓에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애절하지만 어머니에 대해선 그저 덤덤할 뿐이라고 했다. 어느 해 봄, 김동연은 혼자 반찬거리를 싸들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 쌀은 떨어지기 전에 늘 사다 놓으시죠? ”

“응, 항상 20kg짜리 사다 놔.”

“20kg짜리 사갖고 오려면 무거울 텐데 10kg짜리 사다 드시지요. 그것도 한참 드실 텐데, 쌀독에 부으려면 힘드시잖아요.”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했다.

“10kg짜리 사다 쌀독에 부으면 반도 안 차, 쌀독이 비어있으면 너희 어렸을 때 힘들었던 생각이 나서 싫어. 그래서 항상 20kg짜리 쌀독이 차게끔 부어놔. 쌀독이 웬만큼 비기 전에 다시 채워놓고...”

이날 어머니와의 대화를 마치고 김동연은 주차장에 세워둔 차안으로 돌아와 한참을 소리 죽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세 끼를 온전히 챙겨먹기 힘들었던 시절, 끼니로 자주 먹던 수제비, 외상 달고 됫박으로 샀던 쌀, 많이 못 들이고 몇 장씩 사다 쓰던 연탄, 그 시절의 어머니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어린 시절 그에게 비쳐진 어머니는 철인(鐵人)이었다. 자신은 물론 동생들 앞에서 거의 눈물을 보이는 법이 없었던 어머니가 언젠제가부터 자주 눈물을 보였다.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맏아들이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떠맡은 뒤부터 어머니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셨다.

김동연은 자신의 나이보다 20년쯤이나 젊은 아버지의 사진을 종종 꺼내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표현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의 두 눈가에 안개가 서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 하나. 학교에 간다고 하고 만화방에 갔다가 아버지에게 혼난 기억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읽었던 만화는 훗날 자신의 ‘상상력’과 ‘도전정신’의 뿌리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이 자신도 어느 덧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됐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일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던 2013년 10월, 백혈병으로 큰 아들(당시 28세)을 잃는 단장(斷腸)의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김동연은 당시 이런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날 오전, 회사에 휴가를 낸 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오후에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 이때까지도 직원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훗날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큰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에 큰 구멍이 난 것 같기도 하다”며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드러냈다.   <계속>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주요 이력

▲덕수상고·국제대학교(現 서경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시간대 대학원 정책학 석·박사 ▲제26회 행정고시·제6회 입법고시 합격(1982) ▲기획예산처 사회재정과장·재정협력과장(~2002)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2002) ▲세계은행 선임정책관(2002~2005)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2006~2007)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2008~2009)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실 국정과제비서관(2009 ~ 2010) ▲기획재정부 예산실장(2010~2012.2) ▲기획재정부 제2차관(2012.02~2013.03) ▲국무조정실장(2013.03~2014.07)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2015.02~2017.06)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2017.06~ 2018.12) ▲ 現 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