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에세이 7]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①··· 판자촌 소년, 대권후보 영입제안까지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어린 시절의 아픔, ‘위장된 축복’

소년은 1957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상경해 신당동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미곡상에 취직했다가 곧바로 독립할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년의 가족은 배는 굶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 살이 채 10년이 되지 않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서른둘의 젊은 아내와 어린 아이 넷을 남겨 두고 불귀(不歸)의 객이 되어 버렸다. 졸지에 가장을 잃고 하루아침에 가난에 몰린 일가는 구정물이 넘치는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곳엔 풍찬노숙이나 다름없는 모진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1968년, 소년의 나이 열한 살 때다. 소년의 가족은 어렵게 기둥을 구해 세우고 판자를 덧대 겨우 비바람을 막을 정도의 판잣집을 만들었다. 청상(靑孀)이 된 어머니는 채석장에서 돌을 나르고, 산에서 나물을 캐 길거리에 좌판을 벌이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해서 자식 넷을 겨우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청계천 판자촌은 다섯 식구가 몸을 제대로 뉘지도 못하는 비좁은 방이었지만 이마저도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도시정비 사업으로 판자촌이 헐리게 되면서 소년의 가족은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허허벌판으로 나앉았다. 여기서 천막집을 치고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여섯 식구가 살았다. 당시 한 천막 안에 8가구, 30여명이 모여 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궁여지책으로 너도나도 포장마차를 열었으나 파는 사람만 있었지 사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청계천과 용산 등지에서 쫓겨온 빈민들은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며 경찰서를 습격하기에 이른다. 당시 경찰은 시위에 참여한 무고한 빈민들에게 반공법을 뒤집어 씌워 갖은 고문을 일삼았다. 결국 20여명이 구속됐다.

이런 비운의 땅에서 소년은 버스를 타고 서울에 있는 덕수상고(현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진학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소년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대학(현 서경대학교)을 졸업하고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동연 ‘유쾌한반란’재단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일찍이 ‘고졸 신화’ ‘인간 승리’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김동연은 “‘유쾌한 반란’은 남이 낸 문제, 내가 낸 문제, 세상이 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다”며 “있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흩트리는 과정이다”고 재단설립의 취지를 설명했다. ‘있는자리’란 바로 내가 처한 환경,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한다. 김동연이 다니던 덕수상고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우등생들이 진학하는 학교로 유명했다. 그는 일찌감치 취업반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학기인 1974년 한국신탁은행(현 하나은행)에 취직했다. 당시 가난하고 힘없는 그에게 은행은 최고의 직장이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평생 “큰 아들이 은행에 입사한 날이 가장 기뻤다”고 한다. 생계가 절박한 시절에 그렇게 그는 은행원이 됐다. 하지만 직장생활의 현실은 또 달랐다. 무엇보다 고졸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야간대학인 국제대(현 서경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졸 출신이라는 현실의 벽은 높았고, 100m 달리기 경주에서 50m쯤 뒤처진 채 출발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어 야간대학에 입학했다”며 “어느 날 은행 합숙소에서 옆방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잡지를 보고 고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전까지는 고시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고시공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는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대학공부와 고시공부를 병행했다. 피터지게 공부한 끝에 그는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26회)에 동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8년간 다니던 은행에 사표를 내고 1983년 3월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기획예산처 사회재정과장, 재정정책기획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기획재정부 제2차관 등을 두루 거쳤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엄청난 경쟁을 뚫고 미국 유학도 다녀왔다. 1989~1993년까지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정책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국가장학금과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3년9개월이라는 최단기간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상고와 야간대 출신이라는 ‘비주류’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 등 핵심 관료로 일했다. 공직자로서 마지막이 아닌가 싶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김동연은 한국경제의 사령탑인 경제부총리까지 올랐다.

그는 “공직 생활 초기에는 학벌·학연이 없어 손해 본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그러나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노력을 통해 이런 고민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오기 힘들어진 요즘 사회구조에서 보면 그가 부총리가 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는 “축복은 가끔 고통스러운 모양의 탈을 쓰고 찾아온다”며 “어려웠던 시절은 내게 ‘위장된 축복’이었고 그런 어려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동연은 ‘가난’이라는 딱지 이외에도 수 없는 실패를 겪었다. 그래서 자신을 키운 8할은 ‘실패의 경험’이라고도 말한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도전한 1차 행정고시 시험에서 한 문제 때문에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듬해에는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답안지를 가방 속에 넣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들어오는 바람에 실격처리 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적지 않은 아픔을 겪었다. 두세 차례 ‘책상 빼!’의 대상이 되어 보직을 잃고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김동연은 늘 흔들리지 않고 실력을 키우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 지난했던 실패가 오히려 약이 됐다. 최근에는 여야 정치권에서 총리와 서울시장 후보에 이어 대권후보 영입제안까지 받는 등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