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섭 가족기업학회 부회장, 한국경영학회 부회장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윤병섭 가족기업학회 부회장

유럽, 일본 등 장수기업이 많은 국가는 수백년 동안 선대가 후세에게 재산, 전통과 정신을 가업으로 물려주면서 크게 번성한 다국적기업도 있고, 기술이 응집된 가내수공업 형태의 소규모 사업을 영위하며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일본은 삼사백년을 거쳐 가업을 물려받아도 고작 서너명이 일하는 사업장이 부지기수다. 역사가 길어도 기술이 다부진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며 살아간다.

우리나라는 사농공상 유교 중심의 조선시대를 거치며, 상업이 번성했던 신라와 고려의 상인정신과 상업문화 명맥이 끊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살아남은 몇 안되는 기업이 이제 겨우 100년을 넘은 장수기업 반열에 올랐다. 정부가 장수기업을 유지하고 장려하고자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나 압축성장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따라 역사를 압축해 장수기업을 늘릴 수 없다. 그 만큼 장수기업은 역사가 있어야 하고 역사가 증명해 줘야 한다.

장수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업을 원활히 승계하는 것이다. 계주의 바통을 선대가 후세에게 잘 넘겨줘야 한다. 이는 부단한 승계훈련이 10여년 이상 지속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속이 이뤄지고 세금이 징수된다. 문제는 상속과 관련한 세금의 정당성과 공정성 등이 최근 사회적으로 회자되는 공정과 맞물려 논의가 되고 있어 한편으로는 바람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승계기업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안타까움이 겹친다.

우리나라의 상증세와 관련한 법률은 유산세 체제를 기본으로 하여 일제강점기인 1934년 6월 훈령 제19호로 처음 제정됐다. 그 후 여러 번의 제정, 폐지, 개편, 개정을 거쳐 오늘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이르고 있다. 현재도 상증세법 상의 내용을 개정하려는 입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나 개정에 대한 찬반의견이 팽팽하다. 그 이면에는 상증세 감면에 대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뿐 아니라 상속 그 자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시각이 존재한다.

상증세는 부(富)의 집중현상을 직접적으로 조정하고 소득재분배 기능면에서 소득세의 기능을 보완·강화시키는 사회정책적 의의를 갖는 조세로 과세물건을 재산의 이전으로 보는 성격이 강하다.

상증세 감면에 대한 긍정적 의견은 상증세를 법인세 또는 소득세를 지속해 징수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니는 과세유예 제도로 보아 적게 부과하는 상증세를 지지하는 것이다. 상증세 감면이 성장한 가업을 물려주기 위한 인센티브 제공으로 보아 향후 더 많은 투자를 유발하지만, 가업승계 지원세제에 만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조세회피 목적의 합병, 분할, 일감몰아주기 거래 등 비조세비용 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사모펀드나 비관련 업종기업에 가업을 매각한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한편, 부정적 의견은 상증세의 감면이 부자감세, 부(富) 세습 지원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란 분배의 문제를 발생시키므로 높은 상증세를 부과해 소득재분배 기능을 활성화하자는 주장이다.

OECD 대부분의 국가는 가족기업 상속 시 세율 자체를 인하하거나 각종 공제 등을 통해 정책적으로 원활한 가업승계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증세 최고세율 및 GDP 대비 상증세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상증세의 명목-실효세율 논쟁으로 가업승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높임으로써 혁신 투자를 줄이게 하는 아이러니를 가져오고 있다.

상증세는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소득 탈루, 비과세·감면제도 등으로 인해 소득세 과세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조세제도와 기술의 발달이 소득세 과세공백을 상당 부분 해소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상증세율을 높게 유지하는 것은 이중과세의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기술력 있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장기적 투자와 고용 확대에 매진할 수 있는 상증세 부담 완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가업승계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가업승계 없이 지속가능한 회사 존립이 어려우므로 가업승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부의 대물림이란 분배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전통기술 및 경영노하우의 전수로 봐야 한다. 가업승계를 제2의 창업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통해 노력 없는 부(富)의 대물림, 특권의식 가진 2세 경영자, 승계과정의 불투명·불공정성 등 부정적 시각을 극복하고 혁신친화형 가업승계라는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 도출이 절실하다. 직계비속 승계는 기업 스스로 적합한 후계자 양성 및 투명한 가업승계 절차 등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한 자발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유럽연합(EU)도 가업승계가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인식하고, 기업가와 사업이 번창하고 기업가정신이 보장되는 환경 조성을 위한 적극적 지원을 EU 중소기업법에 명시하고 있다.

가업승계는 단순한 부(富)의 이전이 아니라 체화된 노하우 및 기술승계다. 장수기업은 고용창출 능력이 크고 사회적 기여도가 높다. 세금을 성실히 납부해 경제성장을 돕는다는 이타(利他)의 마음을 지닌, 즉 사회 공기(公器)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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