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우리 시대의 知性, 이어령의 ‘마지막 선물’
[문화살롱] 우리 시대의 知性, 이어령의 ‘마지막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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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生)과 사(死)를 바라보는 '이어령의 시선'
- 암투명 중, 남은 힘을 다해 책쓰고 강연하며 농밀한 '生의 시간' 보내
우리시대의 지성, 이어령. 문학적 상상력과 미지의 호기심이 꿈이었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해 파고있다. [출처=GSEEK 영상]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그의 언어는 너무도 명징(明澄)하여 한겨울 처마밑 고드름을 연상시킨다. 흑과 백, 이쪽 저쪽을 구분짓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여 생각과 사고에 있어 ‘그레이존(gray zone)’을 주창해온 그인데, 삶과 죽음이라는 너무도 명백한 갈림길에서 그의 머리 속엔 어떤 언어가 부유하고 있을까.

우리는 이어령이란 인물이 암으로 투병중이며 언제 삶의 저편으로 떠날지 모른다는 소식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 그가 없고, 그가 구사하는 살아있는 언어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쉽사리 수용하기 힘든 어떤 공허를 안겨준다. 하여 안타까움과 더불어 약간의 조급함을 안고 그의 최근 언론 인터뷰와 저서 등을 토대로 ‘우리시대의 지성’ 이어령의 작금의 생각과 사고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인생의 마지막길에서 항암치료도 마다한채 남은 기력을 다해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며 그어느때보다 밀도있는 삶을 살고있으니, 역시나 ‘이어령’이었다. 항상 반발짝 정도 앞서 화두를 던져온 그가 요즘 천착해있는 주제는 바로 ‘죽음’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하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이어령은 2019년초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암투병 사실을 처음 공개하며 이 말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 중요하다.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우리의 삶이 농밀해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해 10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쩌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며 “죽는 것은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생(生)에 대해 이런 말을 덧붙였다.

“모든게 선물이었다.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산소도 바다도 별도 꽃도..”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인 건져올릴 수 없는 너무도 매혹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쯤에서 더 늦기전에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삶과 죽음의 비밀을 일별해보고싶은 유혹이 든다. 그것이 설령 문틈으로 살짝 엿보는 ‘찰나의 일별(一瞥)’이 될지라도. 이어령이 우리에게 주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역설적이게도 ‘찬란한 선물’일 테니까.

죽음에 대하여...‘메멘토 모리’

“너를 잃고나자 그렇게도 멀리있던 죽음이 나의 곁에 불과 몇 센티미터만을 남겨두고 다가오더구나. 어렸을 때 읽은 빅토르 위고의 작품 가운데 이런 글을 보고 고민했던 적이 있어..오늘의 문제는 무엇인가, 싸우는 것이다. 내일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기는 것이다. 모든 날의 문제는 무엇인가, 죽는 것이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中>

이어령은 하나뿐인 딸 이민아 목사를 지난 2012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네 생각이 난다. 해일처럼 밀려온다. 그 높은 파도가 잔잔해질때까지 나는 운다.’ 그가 딸을 생각하며 펴낸 책 속지에는 육필체로 이렇게 쓰여있다. 그의 생에 있어 죽음이 가장 또렷하게 다가온 시점이 언제였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딸을 여읜 고통은 죽음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 “죽음은 씨앗과도 같은 것이다. 슬픔의 자리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떨어진 자리에서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삶을 더 푸르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추임새로 돌아온다”고 딸의 삼주기를 맞은 시점에 펴낸 책의 서문에 적고 있다. 이어 “네가 떠난 뒤부터 생명의 문제, 출생의 문제, 죽음의 문제가 내 글쓰기의 주요 테마가 된거”라고 덧붙인다.

삶과 죽음은 종이의 앞뒷면과도 같을 터. 타고난 지적감각을 갖춘 이어령은 일찍부터 죽음이란 단어를 가까이 두었다. 딸이 떠나면서 그의 표현대로 ‘죽음은 늘 갖고 다니는 휴대폰처럼 벨소리가 울리는 일상의 것‘이 됐을 뿐.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나는 살아있다는 생명의식은 나는 죽어있다는 죽음의식과 똑같다. 빛이 없다면 어둠이 있겠나. 죽음의 바탕이 있기에 생을 그릴 수 있다.”

생(生)과 사(死)를 바라보는 이어령의 시선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었다. 처음 이 라틴어를 대했던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말이 ’모리(mori)‘, 즉 죽음이었지..나는 이제 너의 죽음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아. 그만큼 죽음이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야. 추상명사가 아니라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던지면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 같은 아주 구상적인 명사로 그렇게 내 앞으로 온거야.”

이어령은 톨스토이의 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인용하며 죽음 앞에서 빛이 된 것은 위대한 기억이나 심오한 철학이 아니라 ‘눈물 한 방울’이라고 표현했다. “평소 무뚝뚝했던 (이반 일리치의)아들이, 야위고 망가지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아버지가 너무도 안되고 딱한 마음에 그 가녀린 손을 잡고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데, 그 눈물 한 방울이 죽음의 어둠 속에서 빛이었고 위안이었고 죽음을 넘어서는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거”라며. 

괴테를 모델로 한평생 철학과 문학의 세계를 집요하게 파온 지성의 대가이지만 정작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영혼을 위로하는 것은 ‘눈물 한 방울’이라는 각성에 도달한 듯하다. 그는 올초 한 일간지가 마련한 화가 김병종과의 대담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예수도, 석가도, 공자도 모두 울었다. 사랑과 참회의 눈물이 메마른 사막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코로나주술을 이길 유일한 길은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 뿐이다..내게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병상에 누워 한참을 생각하다 눈물 한 방울에 도달한 거다.”

이어령은 2019년초 투병사실을 고백하며 “암 걸리고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 예쁜 줄 알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생(生)에 대하여...‘My life is a gift’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분명히 내 것인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게 다 선물이더라고.”

‘문학적 상상력’과 ‘미지를 향한 호기심’이 꿈이었다는 그는 호기심의 마지막 우물로 ‘죽음’을 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의 기원으로 거슬러올라갔다고 고백한다.

“죽을 때 돌아가신다고 하죠. 그 말이 기가 막혀요.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라는 거죠. 생명의 출발점..처음부터 내 목숨은 빌린 거였어요. 바깥에서 저 멀리서 36억년의 시간이 쌓여온거죠.”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또다른 삶과의 연결이며, 우주의 탄생인 ‘빅뱅’ 이래 시간과 공간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나로 존재한다는, 시공(時空)을 관통하는 깨달음으로 읽힌다. 그러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는다.

“지금 죽음 앞에서 생명을 생각하고 텅 빈 우주를 관찰하면, 다 부정해도 현재 내가 살아있다는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숨을 쉬고 구름을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어떤 존재인지를 들려준다.

“신은 생명을 평등하게 만들었어요. 능력과 환경이 같아서 평등한 게 아니야. 다 다르고 유일하다는게 평등이지요. 햇빛을 받아 울창한 나무든 그늘 속에서 야윈 나무든 다 제 몫의 임무가 있는 유일한 생명이에요. 그 유니크함이 놀라운 평등이지요. 또 하나 살아있는 것은 공평하게 다 죽잖아.” 

한 사람 한 사람 유일무이한 ‘유니크’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같은 신의 기프트를 알고 죽는 사람과 모르고 죽는 사람은 천지차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창을 열면 차가워진 산소가 폐 속 깊숙이 들어와요. 한 호흡 속에 얼마나 큰 은총이 있는지 나는 느낍니다.” 

죽음이라는 우물을 파는 과정에서 역설적이게도 어느때보다 농밀한 생의 시간을 이어령은 보내고 있는 것이다. 80여년 자신의 삶에 대해선 어떤 해석을 내릴까.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에요.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 품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호기심을 갖는 것, 그리고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내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눈물 한방울’의 힘

“정작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인성(人性)의 눈물이에요. 코끼리나 낙타도 눈물을 흘린다고는 하지만 이 지상에서 실제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지요. 지능이나 체력이 인간보다 월등한 AI 수퍼로봇도 눈물만은 흘릴 줄 모릅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건..우리가 영혼을 지닌 인간임을 증명하고 선언하기 위함이지요. 그리고 자신을 위한 눈물은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있어요..눈물은 희망의 씨앗이기도 한 것입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어령은 코로나19로 보낸 지난 1년을 성찰하며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는 것이 가장 귀중한 교훈”이라고 진단했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삶에서 잠시 멈춰서서 나에게 이토록 소중한 생명을 주신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는 생명의 원천적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도 알게 됐다. 자유와 생명은 같은 뜻이며 자유를 잃으면 다 잃는 것이고 그래서 생명의 가치는 곧 자유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이후는? 그는 코로나라는 코너를 돌고나면 생명화의 시대가 펼쳐진다고 제시했다. “생명이 가장 중요한 테제가 되는 세상, 앞으로 반생명적인 것들은 절대 발을 붙일 수가 없다. 생명은 서로 같이 사는 것 상생하고 공생하고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 죽고 너 살자’ ‘나 죽고 너 죽자’가 아닌 ‘나 살고 너 살자’만이 코로나 시국을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이라는 것이다. 왜? 인류는 포식에서 기생, 기생에서 상생의 ‘자리행 이타행(自利行 利他行)’의 단계로 발전해가고 있다는 게 ‘우리시대의 지성’ 이어령의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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