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 85세까지”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한 세기를 건너온 우리시대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

새벽에 눈을 뜨는 것조차 두렵다는 이야기가 예삿말로 들리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실업자는 넘쳐나고 갈 곳 없는 청춘들은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즐겁고 행복한 날 보다 암울하고 어두운 불행의 그림자가 몰려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 노(老) 철학자가 각종 매체를 통해 들려주는 ‘인생’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솔깃하게 귀에 다가온다. 한국철학의 거두로 일컫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올해 102세인 김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뭘까.

김 교수는 1920년생으로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上智)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생활을 하다가 연세대학교에서 30여년을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현재는 연세대 명예교수로 활동하면서 저술활동은 물론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고 있다. 한 세기를 살아왔지만 그의 정신력과 기억력, 사고력과 판단력이 놀랍다. 유연하고 열린 사고 역시 젊은이들 못지않다는 평가다.

그 역시 30대 중반 연세대 교수로 부임했을 때, 인생을 두 단계로 봤다고 한다. 30세까지는 교육을 받고, 나머지 30년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정년이 되면 자신의 인생도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 그는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 늙지 않는다”며 “인생의 황금기는 60세~75세”라고 말했다. 즉 노력만 하면 60을 넘어 75세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며 90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다. 자신도 60세 이전까지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는 그의 회고다.

내가 살아보니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행복한 건 60세부터였어요. 글도 더 잘 쓰게 되고, 사상도 올라가게 되고, 존경도 받게 되더군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제일 소중한 시기가 바로 열매를 맺을 때입니다. 그게 60세부터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도 따라 늙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정 반대로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몸이 정신을 따라 온다는 그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에게도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한다”고 쓴소리를 내 뱉었다. 그는 “30대든 40대든 공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면 녹스는 기계처럼 노쇠하게 된다”며 “60대가 되어서도 진지하게 공부하며 일하는 사람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부란 독서수준이다. 그렇다면 공부만 하면 건강은 저절로 따라오는가. 그렇지는 않다. 김 교수는 의사들의 말을 인용해 혈압이나 당뇨, 치매 등이 60대에 갑자기 찾아오는 만큼 50세부터는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면 90세까지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군다나 의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100세시대의 도래는 기정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운동방법도 제시했다. 무리한 운동을 경계하라는 주장이다. 운동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라는 충고다. 특히 60세 이후에는 정신건강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고를 많이 해야 매사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요즘 젊은이 못지않게 강연과 저술 등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3~4년 전 쯤만 해도 일 년에 160여 차례나 강연을 했다. 이틀에 한번 꼴이다. 여기에 틈틈이 저술활동도 하고 언론사 등에 칼럼을 쉬지 않고 기고한다. 이런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타고난 체력일까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약골소리까지 들었다. 하물며 가족들도 김 교수의 건강을 단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걷기나 산책을 통해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했다고 설명했다. 이동을 할 때는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그 흔한 지팡이 한번 들지 않았다. 일본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도 허약한 체질로 태어났지만 95세까지 살았다. 무리하지 않는 절제의 건강관리 때문이다. 건강하다고 무리하는 사람은 절대 오래 살지 못한다고 그는 조언했다. 그는 50대에 잠깐 정구를 했지만 파트너 구하기도 어렵고 파트너를 구했다고 해도 서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혼자 할 수 있는 가벼운 수영을 한다고 했다. 그게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는 노후에 일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대부분 노후를 위해 경제적 준비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일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며 그건 “아니다”라고 했다. 공부를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일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는 장수하는 사람들의 직업을 보면 음악지휘자가 가장 오래 산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살기 때문이란다. 또한 자연과 더불어 일하는 사람도 장수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기주의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길 바라고 꿈꾼다. 그러나 행복의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돈과 권력, 명예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에 결코 인간이 행복해질 수 없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욕망은 인간을 늘 배고프게 하고 허기지게 만들기 때문에 ‘만족’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정신적 가치를 찾아 행복의 차원을 높여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명예나 권력, 재산을 거머쥘 때도 있지만 대다수가 결국 불행해지더라는 그의 경험담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적 예술적 가치를 이탈리아의 기업가나 재벌이 남겨주는 경제적 가치와 어떻게 비교하겠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1947년은 독일의 자랑스러운 시인 괴테의 탄신 2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독일은 극심한 전쟁의 후유증 때문에 기념행사를 개최할 여력이 없었죠. 그것을 애석하게 여긴 전쟁의 적대국이었던 미국이 세계적인 기념 축전을 개최했어요. 괴테의 정신적 영향력은 전쟁의 파괴력보다 높이 평가받은 사례입니다.”

그는 “이런 정신적 가치는 소유에서 오는 만족이 아니다. 창조자는 사회에 주기 위한 책임을 감당했고, 우리는 그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며 “정신적 가치를 깨닫는 사람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후세들이 누리면서 행복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행복은 이기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살기 때문에 인격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인격은 다름 아닌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라고 했다. 하지만 이기주의자는 이런 선한 가치를 갖추기가 어렵다고 충고했다.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몹시 가난했다. 해방이 되면서 어머니와 두 동생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해 서울에 정착했다. 결혼을 한 뒤 슬하에 6명의 자녀를 두면서 대식구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그래서 그는 늘 월급인상에 목말랐다. 어쩌다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오면 동료 교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좋아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자들은 등록금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봉급이 올라 좋아했지만 교육자로서 한없이 부끄러웠고 행복하지 않았다는 그의 고백이다. 즉 행복은 공동체 의식이지, 나만을 위한 만족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고 그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인간은 공동체에 대한 의식을 갖출 수 있는 자기 그릇이 커야 그 그릇에 행복을 담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후관리에 대해서도 그는 한 마디 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법. 부부가 인연을 맺는다 해도 언젠가는 혼자 남게 된다. 이때부터 외롭고 고독해진다. 설령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그렇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나이가 들어도 꼭 이성 친구를 사귀라는 그의 당부다. 김 교수도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 지금 혼자 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혼자 남은 늙은이들이 여자 친구를 사귀고 함께 사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여자 친구가 생겨서 같이 살게 됐다’고 말하면 자식들도, 친구들도, 사회도 이해해줘요. 저도 한 10년 전에 그렇게 한 번 모범을 보였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80세 넘어서 혼자가 되면 혼자 있지 말고 여자 친구를 사귀어서 함께 살도록 하세요. 그런데 재산이 많으면 여자 친구와 함께 살거나 재혼하는 것을 자식들이 많이 반대해요. 자식들한테 법적으로 줄 재산 나눠주고, ‘이건 손대지 말라’고 하고, 또 ‘내가 관리하다가 갈 때가 되면 너희한테 줄 수도 있고 사회에 환원할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합리적인 사고가 있으면 좋겠어요.”

김 교수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상지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해방이 되자 탈북에 성공, 서울에 정착했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었고, 군부독재시대를 거쳐 민주화운동 시대까지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근현대사의 역사책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듣고 성장했으며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반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한 세기를 관통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그래서 잔잔하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그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떠날까, 궁금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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