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전남순천은 2020년 3월 기준 인구 28만1800명으로 여수시를 제치고 전남 제1의 도시가 되었다. 전형적인 도농복합도시인 순천은 예부터 남도 특유의 맛과 멋이 어우러진 고장이기도 하다. 2013년 순천국가정원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생태수도 순천의 이미지를 굳히면서 최근 들어 관광과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순천 출신의 김동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이 평소 순천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한 생각을 본지에 보내와 이를 6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제1호 국가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 습지와 공원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볼거리가 다채롭다.<br>
제1호 국가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습지와 공원 등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볼거리가 다채롭다.
김동현 이사장

지난 2019년 여름의 일이다.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지방재정공제회에서는 해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옥외광고업무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업무연찬 워크숍을 개최한다. 2박3일의 일정으로 300여 명의 공무원들이 참석하는 적지않은 규모의 행사다. 담당 직원이 행사 계획서를 가지고 왔을 때, 2019년이 순천시가 정한 ‘순천 방문의 해’였기 때문에 워크숍 개최 장소로 순천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며칠 후 담당 직원이 다시 보고를 들어왔는데 순천에는 30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만한 숙박시설이 없다면서 순천 대신 여수에서 행사를 개최하면 어떻겠냐고 하였다. 에코그라드라는 좋은 호텔이 있는데 알아봤느냐고 했더니 객실 수가 105개 불과해 도저히 행사 개최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숙박시설 문제가 발목을 잡아 결국 순천이 아닌 여수에서 행사를 개최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체 성장동력이 없는 지역이 잘 사는 비결은 간단하다.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지역을 찾아와서 돈을 쓰게 만들면 된다. 국제기구가 밀집해 있는 스위스의 제네바와 같은 도시가 대표적이다. 연중 내내 개최되는 국제회의나 행사 참석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제네바를 찾아와 엄청난 돈을 쓰고 간다. 그들이 쓰고 간 돈은 지역주민들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가고, 그 덕분에 제네바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제네바의 주력산업은 마이스(MICE)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MICE는 회의(Meeting)나 포상관광(Incentive Tours), 컨벤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마이스(MICE)산업은 이미 세계 각국의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지역경제 활성화의 수단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는 산업이다.

그렇다면 순천의 마이스산업 실태는 어떠한가. 앞서 언급했듯이 300명 규모의 워크숍 행사 하나도 유치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마이스산업이 순천에 가능성이 없거나 적합하지 않은 산업이라는 뜻은 아니다. 마이스산업의 발달은 경제성, 안전성, 접근성은 물론 쾌적한 환경(amenity) 등 다양한 조건을 요구한다. 순천은 아름답고 깨끗한 생태환경과 저렴한 물가, 풍부한 먹거리, 편리한 교통 등 마이스산업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마이스산업에 필수적인, 숙박과 회의개최가 가능한 좋은 호텔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호텔이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마이스산업 육성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순천이 마이스산업을 육성한다고 하더라도 수천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국제회의나 전시회 등의 유치를 놓고 서울, 부산 등 대도시와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순천이 택할 수 있는 길은 300명 미만의 소규모 회의나 행사 등을 타깃으로 하는 ‘틈새 마이스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내가 이사장인 한국지방재정공제회만 하더라도 매년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행사나 학회를 개최하는데, 우리 공제회와 같은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대학, 민간기업 등 공략할 대상은 얼마든지 있다.

순천이 전략산업의 하나로 ‘틈새 마이스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최소 200~300개 객실을 갖춘 호텔을 유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틈새 마이스시장을 공략할 전담기구의 설치, 운영이다. 호텔은 마이스산업 육성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1년에 1000만 명 가까이 순천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호텔 건립은 원칙적으로 민간의 영역으로 민간자본 유치를 통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여의치 않으면 순천시가 일정 지분을 투자해 민관합작으로 건립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호텔은 순천만 정원 인근에 건립해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과 연계 운영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은 이미 다목적홀, 공연장, 회의실 등 광주 컨벤션센터 못지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호텔은 고층형보다 순천만 정원과 조화를 고려해 저층형으로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순천만정원 인근에 대한민국 최고의 정원을 앞뜰로 갖는 호텔을 저층형으로 특색있게 건립한다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틈새 마이스시장 공략 전담기구로 순천관광진흥재단 설립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관광진흥재단에서는 전국의 공공기관이나 초중고, 대학, 기업 등을 찾아다니며 각종 회의나 학회, 세미나, 사내 워크숍 뿐만 아니라 스포츠행사, 수학여행 유치 활동을 전개한다. 유치활동 우수 직원들에 대해서는 성과급을 주는 등 과감한 보상도 필요하다. 물론 관광진흥재단의 업무가 마이스시장 공략만은 아니다. 마이스시장 공략을 포함해 국내외 여행객들을 우리 순천으로 끌어들이는 인바운드(Inbound) 관광수요 창출을 위한 마케팅 활동이 재단의 주된 미션이 되어야 한다. 재단의 활동은 처음에는 수도권, 영남권 등 국내에서 시작해 점차 일본, 중국 등 해외 관광객 유치로까지 그 활동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순천시 관광부서에서는 재단이 활발하게 관광객 유치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책개발과 관광인프라 구축, 행정·재정적 지원 등을 담당한다.

종사자수 기준으로 본 순천의 산업구조를 보면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에 종사하는 소상공인들의 비중이 30%를 넘는다. 한마디로 소상공인들이 우리 순천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심세력이다. 그런 점에서 소상공인을 경제정책의 최우선에 두는 ‘소상공인 First정책’이 절실하다. ‘소상공인 First정책’의 핵심은 소상공인들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시장(구매) 수요를 창출해주는 일이다. 지금까지 순천의 소상공인들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구매는 주로 순천시민들(제1의 시민)과 타 지역에 살면서 직장인 순천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제2의 시민)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이제는 관광이나 회의, 행사 참석을 위해 우리 순천을 찾는 ‘제3의 시민’ 유치를 통해 더 큰 시장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마이스산업, 더 나아가 관광산업 육성의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