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전 부총리, 도산리더십포럼서 '유쾌한 반란' 주제 강연
"우리사회의 킹핀은 승자독식 구조"
고용절벽, 철밥통, 거품경제 등 3대 금기 깨야
"대기업은 규제, 中企 무조건 지원하는 금기도 깨야"
"추월의 기회는 코너링에서... 우리는 지금 코너링 중"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이 21일 도산아카데미 주최 도산리더십포럼에서 '대한민국의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가 21일 도산아카데미 주최 도산리더십포럼에서 '대한민국의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평균 성적이 40점 정도인 대한고등학교는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이 대부분인 동네 학교다. 어느날 이 학교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교장과 교사가 바뀌고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모아지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학교는 시험과 입시에 대한 보상을 강조하며 공부를 시켰다. 이후 학생들의 성적은 놀랍게 상승했다. 72법칙에 의해 1년에 10%씩 성적이 오르고 7년만에 평균 80점 성적의 상위권 학교가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크게 3가지다. 성적이 더 이상 오르지않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보상을 강조하고 경쟁심리를 부추기는 스파르타식 교육의 한계가 온 것이다. 이와함께 학생들간 성적격차(성적의 양극화 심화), 교우관계가 경쟁관계로 치우친데 따른 불신과 갈등, 불공정의 문제가 불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 간에 기존의 방식과 새로운 방식을 두고 심한 의견대립이 빚어진다.’

대한고등학교는 가상의 학교로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자,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더 이상 성장이 힘든데다 흑백논리, 진영논리, 권력투쟁, 기득권투쟁으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게 된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의도에서 구성한 가상의 이야기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는 대한고등학교(대한민국)가 처한 문제의 본질로 우리사회의 ‘승자독식 구조’를 지목한다. 볼링의 핀을 예로 들며 1번핀과 3번핀 뒤에 숨은 5번핀 즉 모든 핀을 쓰러뜨릴 수 있는 ‘킹핀’(우리사회 문제)은 바로 승자독식 구조라는게 그의 판단이다.

아래로부터의 ‘유쾌한반란’을 통한 사회변화를 주창해온 김 전 부총리가 21일 서울 용산 몬드리안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도산아카데미(이사장 구자관) 리더십포럼에 강연자로 나섰다. ‘대한민국의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한 이 날 강연에서 김 전 부총리는 급속한 경제성장 이후 정체 국면에 접어든 우리경제와 분열된 사회현상의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해답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갔다.

“우리 정치판만 보더라도 단 한표만 이기면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 구조다. 입시, 취직시험, 입찰, 모든 게 그렇다. 승자독식 구조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승자와 패자의 기준이 상대적인 성과에 의해 갈린다는 것이다. 상대보다 높은 성과와 점수를 내야하는 것은 무한경쟁을 의미한다. 사회보상체계가 이렇다보니 기여에 비해 아주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사람이 생기고, 책임에 비해 권한을 남용하는 사람이 많은 구조를 갖게 된다. 자원과 투자가 왜곡이 되기 쉽다.”

김 전 부총리는 승자독식 구조가 우리 사회에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한마디로 키워드는 ‘기회’라고 제시했다. “우리사회가 언제부턴가 역동성을 잃고 기회가 만들어지는 가능성이 줄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뿐만 아니라 “기회가 주어져도 불공평하게, 말하자면 고르지않은 기회가 주어진다”며 “기회를 많이 만들고 서로간에 공평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앞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매 정권마다 현란한 구호와 함께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그런데 그것들이 과연 제대로된 노력이었을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예로 들면 물론 필요한 얘기고 좋은 얘기다. 비정규직 일부를 정규직화 했을 때 승자독식 구조가 깨질까? 승자를 조금 더 만들 뿐 여전히 승자독식 구조는 그대로 가는거다.”

그는 무한경쟁 구조의 특징을 ‘의자빼기 놀이’에 비유하며 ‘모두의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10대는 입시전쟁, 20대는 취업전쟁, 30대는 자산과 승진 전쟁, 40대는 자녀교육 전쟁, 50대 이후는 노후준비를 위한 전쟁으로 이어지는 전 생애주기에 걸쳐 무한경쟁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앞의 대한고등학교는 어떻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할까. 해답은 승자독식 전쟁의 종전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김 전 부총리는 ‘금기깨기’에 의해 종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사회의 3대 금기(禁忌)로 ‘고용절벽’ ‘철밥통’ ‘거품경제’를 제시했다.

우선 고용절벽의 금기를 깨려면 스타트업이 쿠데타를 일으켜야하고 노동유연성과 규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철밥통은 투자한 노력과 기여에 비해 훨씬 많은 보상을 받는 계층, 특정 직업군, 독과점 시장 등을 가리키며 철밥통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진입장벽을 치게 되고 성안과 성밖으로 나뉘게 된다고 밝혔다. 거품경제의 핵심은 부동산과 교육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과 교육은 아주 비슷한 패턴을 지니고 있는데, 부동산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고 자녀교육을 위해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으로 인해 정작 돈이 가야할 곳에 자원이 투자되지 못한단 얘기다. 또 부동산과 교육에 있어 빈익빈 부익부가 나타나고 자산격차와 교육격차가 심화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기업의 투자 코스트가 올라가고, 학벌위주 교육은 혁신이 일어날 여지를 없앤다고 강조했다.

김 전 부총리는 “철밥통과 거품경제로 인해 고용의 기회와 일자리가 줄고,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거나 불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느 사회, 어느 분야든 금기를 깨기란 쉽지않다. 김 전 부총리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목표로 간주됐던 ‘마(魔)의 4분벽’을 예로 들었다. 1.6㎞를 4분 내 주파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중거리 육상선수들의 숙원이었다. 그런데 1954년 영국의 로저 배니스터가 옥스퍼드대학교 트랙에서 사상 최초로 1.6㎞를 4분 이내에 주파한다. 그 벽이 깨졌다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다른 수십명의 육상선수들이 간단히 그 벽을 뛰어넘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김 전 부총리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스스로 쳐놓았던 한계점을 걷어낸 결과”라며 “한번 금기가 깨지면 봇물 터지듯 기록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21일 도산리더십포럼 강연에서 분열된 우리사회 문제의 본질로 '승자독식 구조'를 지목했다. [황복희 기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21일 도산리더십포럼 강연에서 분열된 우리사회 문제의 본질로 '승자독식 구조'를 지목했다. [황복희 기자]

이밖에도 깨야할 금기는 많다고 그는 제기했다. 대기업도 늘어나야한다고 했다. 대기업은 규제의 대상이고 중소기업은 무조건 지원해야된다는 금기도 깨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소기업 지원은 특정기준에 의해 특정기업을 지원하는 형태가 아니라 생태계를 조성하고 기업가정신을 유도하는 방식의 간접지원책으로 바뀌어야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기깨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신 안전망’ 구축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청년들이 도전과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한번의 시험이나 1점차로 승자가 갈리고 그 승자가 독식을 하는) 사회보상체계에 기인한다”며 “실패도 장려하고 새로운 재기의 가능성을 만들며 다양한 인재풀 속에서 대학 갈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매스 에듀케이션은 이제 누구든(Any person), 언제(Any time), 어디서든(Any place)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식으로 변화돼야하며 이는 이번 코로나사태로 더욱 분명해졌다고 설명했다.

김 전 부총리는 대중의 지혜, 집단지성, 시민참여와 공론화 등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실현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6년 타임지가 그 해의 인물로 ‘You’(당신)를 선정한 것을 예로 들며, “앞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실천의 중요한 키(key)라고 말했다.

“우리에겐 다시 위기와 기회의 창이 열렸다. 쇼트트랙에서 직선링크에선 앞선 선수를 쫓기 어렵다. 추월의 기회는 코너를 돌때다. 우리나라는 지금 코너를 돌고 있다. 쪼개진 나라의 근본 원인은 승자독식 구조에 있고 이걸 깨서 기회를 만들고 고른 기회를 줘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금기를 깨야하고 그 금기를 깨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될지 생각을 모았으면 한다.”

그는 "우리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주변의 사회문제에 민감하고 뭔가 반응을 보이는 것이 바로 '사회를 뒤집는 반란'이라며  “다산 정약용선생이 경세유표 집필동기로 제시한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하는 시도’를 위해 각자 위치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로 강연을 맺었다. 김  전부총리는 이날 강연을 마치고 사단법인 도산아카데미 고문으로 위촉됐다. 

김동연 전 부총리와 참석자들이 강연이 끝난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1일 도산리더십포럼에서 김동연 전 부총리(가운데)와 참석자들이 강연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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