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사매면 서도리, 혼불문학관을 다녀오다'
대하소설 '혼불' 10부작 남기고..
51세에 세상 뜬 작가 최명희의 흔적을 찾아서..

노적봉 기슭에 단아하게 자리한 혼불문학관. [황복희 기자]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나는 원고를 쓸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 하나 세울 수 있다면..”

전북 남원시내에서 북으로 가다 임실로 넘어가기 직전, 노적봉(567m)아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인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 위치해있다. 작가 최명희의 본관인 삭녕최씨 집성촌으로 이곳 560번지엔 작가의 부친 최성무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노적봉 기맥을 가두기 위해 팠다는 청호저수지를 끼고 산기슭에 단아하게 앉은 ‘혼불문학관’을 찾았다. 몰락해 가는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다룬 ‘혼불’ 10부작을 남기고 1998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 최명희를 기리기 위해 2004년 개관한 곳이다.

노적봉 기맥을 가두기 위해 팠다는 청호저수지. 혼불문학관 바로 옆에 있다. 

문학관에 닿기까지 여기저기 갈아엎은 논밭엔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대지가 씨앗을 품을 채비를 하고 있고, 어머니품처럼 넉넉한 지리산 자락이 지평선을 아늑하게 두르고 있다. 최명희는 부친의 고향이자 자신의 뿌리인 이곳 남원에 대해 이렇게 남다른 애정을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남원여자라고 부르지요. 모두가 소설 ‘혼불’ 덕분이죠. 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남원말을 쓰는데 그 말씨가 무척 애정이 가요. 전라남북도와 경상도 접경지역인데다 지리산을 끼고 있고 평야가 있지요. 그런 지리적 여건 때문에 여러 지방말이 한데 섞이고 어우러져 독특한 억양을 만들어내지요. 판소리의 근원지이기 때문에 가락이 있고 말 하나하나에 맛이라는게 있어요.”

하지만 정작 작가는 전주에서 태어났다. ‘혼불’을 집필하는 15년간 노봉마을을 수시로 드나들며 소재를 캐고 또 캤다. “그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는게 집필동기다.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들녘. 

한옥으로 지어진 혼불문학관은 활짝핀 봄꽃이 잘가꿔진 잔디정원과 주변을 곱게 치장한채 서도리 들녘을 고즈넉이 굽어보고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작가의 생전 육성이 공간을 가로질러 귓전을 울린다. 짧고 굵은 생(生)을 살다간 작가는 비단 작품 뿐만 아니라 인터뷰 등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울림을 주는 언어의 유산을 남기고 떠났다.

“한 시대와 한 가문과 거기 거멍굴 사람들의 쓰라린 혼불들은 저희끼리 스스로 간절하게 타오르고 있으나, 나는 아마도 그 불길이 소진하여 사윌때까지 충실하게 쓰는 심부름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다 못한 이야기를 뒤쫓느라 밤이면 잠을 이루지못한다. 단 한사람만이라도 오래오래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아 주셨으면 좋겠다. 그 눈길이 바로 나의 울타리인 것을 나도 잊지않을 것이다.”

이처럼 불타는 열정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혼불’을 미완의 작품으로 남겨둔채 비교적 이른나이에 세상을 뜬다. 마치 작가의 목숨을 먹고 작품이 태어난 듯이... 만년필로 써내려간 육필원고와 유품, 지인에게 보낸 편지 등을 살펴보면, 소설 ‘혼불’을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몸부림치며 영혼의 정수(精髓)를 짜냈는지 알 수가 있다. 작가는 숨을 거두기 전 이런 말을 남긴다. “‘혼불’ 하나면 됩니다...아름다운 세상입니다...참으로 잘 살고 갑니다.”

10부작 대하소설 '혼불'을 남기고 51세에 세상을 뜬 작가 최명희. 

소설 ‘혼불’은 1930년대 남원 매안 이씨 집안의 종부 3대가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룬다. 청상의 몸으로 다 기울어져 가는 이씨 집안을 힙겹게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 허약하고 무책임한 종손 강모를 낳은 율촌댁, 그 종손과 결혼한 효원 등이 주인공이다.

작가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소설의 본 줄기보다 더 정성스럽게 당시의 풍속사를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 구현된 민족문화의 면모는 그 어느 민족지에 기술된 것 보다 더 정확하고 다채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관엔 소설 속 장면이 디오라마로 구현돼 있다. 효원의 장례식, 강모 강실의 소꿉놀이, 액막이 연날리기, 인월댁 베짜기, 강수 영혼식, 춘복이 달맞이, 청암부인 장례식 등등.

뿐만 아니라 문학관 주변엔 소설의 중심무대인 종가와 노봉서원, 거멍골, 근심바위, 늦바위고개, 당골네집 등이 군데군데 자리해 ‘혼불’의 스토리를 변함없이 써내려가고 있다. 특히 소설속 효원이 신행(新行)올 때 기차에서 내린 장소인 구(舊) 서도역은 1932년 지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역사(驛舍)로 아름답게 보존돼있다.

소설 '혼불'의 배경장소 중 하나인 구(舊) 서도역이 멀리 보인다. 1932년에 지어졌다.  

문학관을 나와 구 서도역까지 30분가량 흙내음 물씬한 들판을 끼고 걷다보면 소설속 매안 이씨 종가와 거멍굴 사람들의 터전인 서도리 들녘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그들이 땅을 바라보는 시선과 품성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땅에 떨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썩는다. 땅이 무엇을 거부하는 것은 본 일이 없다. 사람이나 짐승이 버린 똥 오줌도 땅에 스며들면 거름이 되고, 독이 올라 욕을 하며 내뱉는 침도 땅에 떨어지면 삭아서 물이 된다.”

작가는 살아생전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며, 한 나라 한 민족의 정체는 모국어에 담겨있다”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혼불’을 ‘아름다운 소설’이라 부른다. 하물며 생전에 지인에게 보낸 편지글에서도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아름다운 문체가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드러난다. 전시관 유리창에 붙어서서 그 긴 편지글만 읽어도 이곳을 찾은 발품이 아깝지가 않다. 4월의 어느날 해는 뉘엿뉘엿 서산을 넘고, 녹슬은 철길 위를 꿈인 듯 생시인 듯 혼불이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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