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람이 힘이다"...정철수 일신화학공업 대표
[인터뷰] "사람이 힘이다"...정철수 일신화학공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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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임오순 선대회장, 국내에 비닐 보급한 '백색혁명'의 선구자
장인의 간곡한 요청으로 발디뎌 32년째 회사운영
전자재료용 보호필름 개발, 세계 최고 기술력 인정받아
연간 1500억 매출의 중견기업 일궈
70년대 '백색혁명'으로 불린, 비니루의 대명사 '학표필름'의 일신화학공업을 32년째 운영하고 있는 정철수 대표이사를 인터뷰했다. 창업주 임오순 선대회장의 맡사위다.
70년대 '백색혁명'으로 불린, 비니루의 대명사 '학표필름'의 일신화학공업을 32년째 운영하고 있는 정철수 대표이사를 인터뷰했다. 창업주 임오순 선대회장의 맏사위다.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1989년 10월 어느날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일신화학공업 건물 4층에 30대 중반의 젊은이가 들어섰다. 사무실에선 노조 설립을 앞두고 직원회의가 한창이었다. 옆에서 조용히 회의를 지켜보던 젊은이는 ‘회사를 상대로 한 직원들의 10여가지 요구사항 중 7~8개 정도는 당연히 수용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다름아닌 1967년 일신화학을 창업한 임오순 당시 사장의 맏사위인 정철수 현 대표이사였다. 현대종합상사에 근무하던 맏사위에게 회사운영을 맡기고 싶어하는 장인의 간곡한 바람을 뿌리치지 못해 현대 사장까지 하려던 꿈을 접고 첫 출근을 한 날이었다. 그는 이후 장인의 뒤를 이어 32년째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일신화학 노조는 정 대표가 첫 출근한 바로 그 달에 설립이 돼 회사가 성장하는데 있어 대표이사와 환상콤비를 보여주게 된다. 위의 일화에서 보듯이 노조와 직원에 대한 대표이사의 열린 마인드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지난 8일 일신화학 안산공장 사장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작은 ‘비니루’ 회사를 연매출 150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키운 비결에 대해 “노동조합과의 협력과 상생”이라고 대답했다. “어느 누가 잘나서 이룬게 아니라 당시만해도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한마디에 입사해 30년 이상 밤낮없이 일한 충성도 높은 직원들이 있기에 일신화학이 잘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기업의 시스템에 적응돼있다가 중소기업에 와서 처음 10년간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30대 중반에 처음 왔을 때 당시 여고졸업을 앞두고 있던 10대 후반의 여직원 5명과 새벽부터 밤중까지 7~8년간을 함께 고생을 했어요. 그들 덕분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1년에 한, 두차례 만나 식사를 하며 사는 얘기를 나눕니다. 원로 ‘OB’들도 매년 여름 보신탕집으로 초대하고 명절 때 선물을 챙겨드립니다.”

대기업은 조직(시스템)이, 중소기업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정 대표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사람’에 들이는 정성은 각별하다. 타고나길 정(情)이 많아 돌아가신 모친이 그 점을 경계했을 정도로 ‘관계’에 대한 애착이 깊다. 그런 그가 감명깊게 가슴에 두고 있는 고전의 한 대목이 있는데, 바로 ‘춘향전’이다.

“이몽룡이 급제를 하고 밤늦게 걸인행색으로 춘향이 집 담옆을 지나는데, 담너머에서 월매가 정한수를 떠놓고 사위의 장원급제를 간절히 비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때 몽룡이 ‘벼슬한게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장모의 덕이구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구절을 제일 좋아해요.”

그는 평소 직원들에게도 “우리가 잘되는 건 누군가 우리가 잘되기를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며 “그래서 많이 베풀어야한다”고 누누이 말한다. 연말 성과급에서 십시일반 모아 매년 7000만~8000만원씩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 것도 그같은 사풍(社風)에서 비롯됐다. 최근에 신입사원 8명을 신규 채용했는데, 그 중 5명은 직원이 추천한 사람으로 아들을 추천해 부자(父子)가 함께 근무하게 된 케이스도 있다.

'학표필름'으로 유명한 일신화학공업㈜ 안산공장 모습.
'학표필름'으로 유명한 일신화학공업㈜ 안산공장 모습.
창업주 임오순 선대회장 동상

‘학표필름’으로 유명한 일신화학공업㈜는 지난 53년간 한국 시설원예 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해 온 국내 농업용 필름 생산의 선구자다. 20년전부터 산업용 필름과 전자재료용 보호필름 시장에도 뛰어들어 지금은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아 글로벌기업인 미국 코닝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대만 코닝과 한국 코닝이 물량을 서로 가져가려고 다툴 정도다. 이에 전자재료용 보호필름의 매출비중이 전체의 35%로 커지고, 과거 매출을 주도하던 농업용 필름은 45% 정도를 차지한다.

창업주인 임오순 선대회장(2013년 작고)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60년대초 방산시장에서 비닐 대리점을 하다가 1967년 서울 전농동의 100평 남짓한 공장에서 직접 비닐을 생산하면서 일신화학을 창업했다. 1970년 7월 정식 등록된 ‘학표’는 학(鶴)처럼 고귀하고 오래가는 제품을 만들자는 뜻에서 명명된 상표로 오늘날까지 일신화학을 대표하는 브랜드이자 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비닐하우스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승승장구했다. 농업용 광폭필름과 각종 기능성 필름에 이어 2000년대 폴리올레핀 코팅 필름, 곤포사일리지 필름 국산화 등 혁신적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면서 시장을 선도했다. 현재 대략 50여가지의 농업용 필름을 생산하고 있다. 무엇보다 산업용, 전자재료용 필름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세계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 결과, 2014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고 그 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명문장수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1975년 서울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정 대표는 현대종합상사 신입공채 1기로 입사해 중동바람이 불던 70,80년대 쿠웨이트에서 현장근무를 하기도 했다. 당시 '왕회장'으로 불리던 고 정주영 회장이 쿠웨이트를 방문했을 때 수행비서 겸 테니스 파트너로 5박6일간 같은 호텔방에서 지낸 적도 있다. 정 대표는 ‘왕회장’에 대해 이렇게 추억했다.

“시차에 상관없이 새벽 4시반에서 5시 사이에 정확히 일어나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셨어요. 이후 30분 동안 캐나다 다리공사 현장, 요르단 등지 전 세계로 전화를 거셨죠. 칭찬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혼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만큼 현장을 꿰뚫고 계셨어요. ‘왕회장’이 현장으로 오신다고 하면 벌써 한달 전부터 현장 책임자는 긴장합니다.  이때 본사 비서실에서 왕회장을 모시는 일종의 지침이 내려오는데, 예를 들어 음식은 ‘맵지도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이런식입니다. 정말로 어렵지 않습니까.”

옆에서 가까이 모셔본 결과, 고 정주영 회장에게선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있었다고 정 대표는 회고했다.

정 대표는 지난해 4월부터 한국플라스틱제조업협동조합 이사장도 맡고 있다. 기존의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와 별개로 2019년 11월 출범했다. 국내 제조업의 핵심기반 산업인 플라스틱업계 전체를 대표하고 전 업종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대 정부를 상대로 환경폐기물 문제 등 각종 과도한 규제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새롭게 꾸려진 단체다.

“장인은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와 비닐을 보급하면서 우리나라 ‘백색혁명’의 선구자로 불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플라스틱 제조업체가 환경오염의 주범처럼 돼 버렸어요. 우리 회사만해도 한해 15억원의 폐기물부담금을 내고 있습니다. 기름값 상승으로 인한 원료가격의 급속한 인상과 더불어 폐기물 문제가 업계의 양대 현안입니다. 원료가격은 전후 사정을 보면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수에즈운하 봉쇄와 중국·인도 태양광 수요폭발 등 댓가지가 한꺼번에 꼬여 일어난 만큼 사태가 끝나면 풀릴 것으로 봅니다. 다만 농민들에게 피해가 가지않게 수급문제에 잘 대처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폐기물 문제는 쉽게 정리될 사안이 아니에요.”

정 대표는 업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양 단체를 합칠 용의가 있다고 주저없이 얘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경남고 동기인 그는 토성초, 경남중, 경남고를 차례로 거친 영락없는 ‘부산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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