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의원, ‘의회 금메달’ 수여 법안 발의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참여한 인도주의자

미 하원이 '의회 금메달' 수여를 추진하는 한국계 김영옥 대령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미군 최초의 아시아계 전투대대장 김영옥 대령(1919∼2005년)에게 ‘의회 금메달’을 주는 법안이 지난 27일(현지 시간) 미국 하원에 의해 발의됐다. 이 메달은 미 의회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상으로 이번 법안은 한국계 미국 하원의원 4명이 주축이 됐다.

메릴린 순자 스트리클런드(59·민주·워싱턴), 앤디 김(39·뉴저지·민주), 미셸 박 스틸(66·캘리포니아·공화), 영 김(59·캘리포니아·공화) 의원은 이날 김영옥 대령의 지도력과 인도주의 실천을 기리기 위해 의회 금메달을 수여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스트리클런드 의원은 “인종 차별 및 증오 범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지금 아시아계 미국인이 국가에 기여한 바를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2011년 미국 포털사이트 엠에스앤닷컴(msn.com)은 김영옥 대령을 포함해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워싱턴, 아이젠하워 등을 미국 전쟁영웅 16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김영옥은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독립운동가 김순권 선생의 아들로 태어난 한국계 2세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불패의 신화를 남긴 전설적인 영웅이다.

김 대령은 아버지로부터 “일본 음식은 먹지도 말고 일본 아이들과는 놀지도 말라”며 철저하게 반일교육을 받았으나, 미 육군 장교로 부임한 뒤 자진해서 100대대에 자원했다. 당시 100대대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미국이 일본계 이민자의 충성심을 의심해 일본계시민 12만명을 격리수용한 뒤 이들 2세들을 중심으로 편성한 미군부대였다. 당시 100대대 대대장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갈등을 우려해 김영옥 대령을 다른 부대로 보내겠다는 제안을 했으나 김 대령은 거부했다. 김 대령은 “일본인도 저도 미국 시민으로 같은 목적을 위해 싸운다”는 말로 거부사유를 대신했다.

그가 세운 전훈은 눈부시다 못해 전설에 가깝다. 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이 이탈리아 로마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때 김 대령은 야간을 틈타 부하 1명만을 데리고 적지에 침투, 포로 2명을 생포해 나치로부터 로마를 해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이탈리아 피사 해방전에서는 제갈공명을 무색케 하는 신출귀몰 작전으로 단 한명의 사상자 없이 피사에 무혈입성하는 전과를 세우기도 했다. 이밖에 프랑스에서도 연합군이 독일에 진입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인 보주산맥전투에서 브뤼에르, 비퐁텐 지역을 해방시키기도 했다. 김 대령은 로마 해방의 공훈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것을 비롯해 프랑스의 십자무공훈장과 미국의 10여개 무공훈장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김 대령은 예편을 하고 나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러던 터에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는 뉴스를 접하고 주저 없이 한국군에 자원입대했다. 당시 그는 통역장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어를 모르는 것처럼 위장해 보병부대로 재입대 했다. 특히 유엔군 3차 반격 당시인 1951년 5~6월 사이 전투에서 60km를 북진해 얻은 그의 전과는 오늘 날 휴전선의 원형이 됐다.

그는 6.25전쟁에서 얻은 부상으로 큰 수술만 40여차례를 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 정계와 재계의 유혹을 뿌리치고 입양아‧장애인‧노인‧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다가 2005년 눈을 감았다. 하와이주 호놀룰루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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