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태환의 인문학 칼럼

하태환 논설위원.
하태환 논설위원.

전국시대 말기 엄격하고 공정한 법의 제정과 집행을 통해 후진국 진(秦)의 개혁을 주도하여 시황제에 이르러 중국 전체를 통일하게 한 상앙(商鞅 B.C.390~B.C.338)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특히 최근에 중국 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이 집단 지도체제를 벗고 1인 절대 권력자인 두 번째 시황제로 등극하는 작업이 착착 진행되었기에, 수천년 이웃인 우리로서는 강대한 황제국가의 탄생이 그리 달가와 보이지는 않는다. 역사상 중국에 강력한 통일 황제국이 탄생하면 예외 없이 그 힘을 외부로 발산하였고, 중국의 코앞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듯한 한반도는 의례적으로 중국 신흥 세력의 확인 침략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상앙이 남겼다는 상군서에 민약국강, 민강국약이라는 말이 있다(백성이 약해지면 나라는 강해지고, 백성이 강해지면 나라는 약해진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와 국민 사이의 관계를 힘을 중심으로 파악해 놓은 마키아벨리적 통치론인데, 고금의 모든 전체주의 국가들이 애써 따르는 치세술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을 빼야 한다는 약민 사상은 오늘날 대한민국이나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국가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창조적 욕구가 건전하게 발전해야 나라 전체가 강해진다는 개인주의 사상이 굳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2천년도 더 오랜 옛날부터 주장된 상앙의 법가주의 사상은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해묵은 논쟁의 두 대립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면 법에 대한 개인의 자유, 법의 일관성과 보편성 대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 국가라는 전체주의와 개인적 민주주의, 사회주의와 개인주의의 대립 등이다.

특히 시스템이 우선인가 아니면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작동자가 더 우선인가 하는 논쟁을 생각하면 이 문제는 우리 사회 깊숙이 박혀 있는 이데올로기 투쟁에까지 번질 수 있다. 소득 주도 경제인가 혁신 주도 경제인가도 여기 해당된다. 하물며 환경이 먼저인가 아니면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하는 개인이 우선인가를 놓고 따진다면 테러나 범죄의 발생, 교육과 문화, 사회적 문제에도 관계됨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는 개천에서도 용이 나올 수 있고 다른 닫힌 사회는 그것이 불가능한가도 비교할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터지면 그 원인을 여러 가지 문제로 돌린다. 물론 우선은 개인의 욕심이나 심리적 요인으로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도 아주 흔하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나 밀양 화재 참사가 발생했을 때 모든 매스컴은 한편으로는 선박이나 건물 소유주에게서 원인을 찾고자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전체의 배금주의, 안전 의식 결여, 부도덕성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특히 사회의식이 강한 지도자 분들은 모든 사회적 참사의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고 선언하면서, 사회적 책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임에도 범국가적 재난 대책 위원회를 꾸리고 보상을 요구한다.

그런데 천재지변이 아닌 상당히 많은 재난의 경우에 관점을 달리해서 개인이 조금만 더 안전에 신경 썼더라면 충분히 막고 쉽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사우나처럼 밀폐된 환경 속에 오래도록 머물러야 한다면, 기본적으로 비상 탈출구가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가하고 순간적으로 확인만 했어도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평소에 그런 안전 관리가 습관화되어 있었다면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를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울러 사회를 이루는 것은 각각의 개성을 지닌 개인들이다. 사회와 개인은 대립적 존재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 발전할 때에 우리의 미래도 밝아진다. 국가를 위해 희생당하는 개인이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를 무시하고 개인만 폭주하는 이기주의적 욕망도 추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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