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바람이 내 안에 머문 시간들은, 그리움이 영글어가는 시간..."
[현장] "바람이 내 안에 머문 시간들은, 그리움이 영글어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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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익 작가 개인전 '바람 머문 시간'
10~16일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아크릴액자에 '수묵담채 한지조각' 작품 선보여
한지 1천장 오리는데만 3년 걸려
음양오행의 우주, 산천, 만물, 인간을 한지조각으로 표현
조광익 작가의 수묵담채한지조각 작품 '열매를 품다'(65×65㎝)
조광익 작가의 수묵담채한지조각 작품 '열매를 품다'(65×65㎝)
조광익 작가
조광익 작가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어느날, 숲에 이르러 바람이 체온에 순화되어가는 만큼의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그 바람이 내 안에 머문 시간들은 꿈을 수놓을 수 있는 시간이며 그리움이 영글어가는 시간이다...“

그에겐 ‘바람의 아들’이란 이름이 어울렸다. 산동(山童) 조광익 작가(65) 얘기다. 그의 15번째 개인전이 마련된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를 찾았다. 손이 아플 정도로 가위로 오린,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한지 조각들이 작가가 나고 자란 남도(순천)의 바람을 머금은채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붉거나 노랗거나 거뭇하거나, 퍼렇거나 희멀건...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다섯가지 오방색(五方色)이 조각조각 한지에 입혀져 음양오행의 우주를, 산천을, 만물을, 그리고 인간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투명 아크릴액자에 차곡차곡 생명의 숨결인 ‘바람’을 ‘품안기’ 했다고 작가는 말했다.

전시회 제목도 ‘바람 머문 시간’이다. 왜 ‘바람’일까?

“바람을 주제로 한 것은 2014년부터다. 바람과 흙, 풍토를 주제로 작업을 하다 바람만 갖고 해보고 싶었다. ‘자연스런 바람을 품어안는 모습이 없을까’ 연구하다가 종이 자체가 바람을 품안는 모습을 박스에 쟁겼다. 바람은 생명이 태어나 죽을때까지 갖고 가는 것이다. 태어날 때 가장 먼저 하는게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죽을 때 그 바람을 내뱉는게 마지막이다. 바람을 품안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표현했다. 바람은 이처럼 생명이 품안는 것이기도 하지만 희망을 바라는 ‘바람’의 의미도 지닌 중어적인 뜻으로 썼다.”

그 ‘바람’을 담고자 한지 앞면은 먹으로, 뒷면은 담채로 드로잉을 해서 종이 자르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고. 그 전의 드로잉작(作)과 비교하면 일단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엄청난 ‘노동’이라고 그는 말했다. 30호 사이즈의 한지 1000장을 3년간 손이 아프도록 잘랐다고 덧붙였다.

“옛말에 ‘종이에 바람든다’는 얘기가 있다. 종이가 오래되고 보관을 잘못하면 바람이 들어 푸석해진다. 종이가 직접 바람을 품안는다는 의미를 거기서 가져왔다.”

조각조각 덧붙인 한지들은 숲을 형상화한 것이자 허파꽈리를 상징한다. 자연의 숲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이 허파이며 호흡을 통해 자연의 숲과 연결된다고 작가는 의미전달을 했다.

조광익 작가의 그 숲엔 항시 ‘인기척’이 흐른다. 한지로 형상화된 숲에 띄엄띄엄 놓인 한자(상형문자)와 한글(표음문자) 조각은 ‘인기척’을 표현한 것으로 ‘인간’을 뜻한다고. ‘자연의 형상’인 한자와 ‘자연의 소리’인 한글 조각을 섞어 ‘인간’을 함축시켜 놓았다는게 그의 표현이다. “글씨는 인간 밖에 모르잖아, 인간이 만든거고 인간의 숨결이 깃든 부호”라고 부연 설명했다.

그의 작품엔 ‘달’이 즐겨 등장한다. “달을 많이 그리는데, 달은 기운을 돋우는 일을 하고 태양은 기운을 뺏아가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며 “밤에 달기운 즉 음의 기운을 받아 축적해야 낮에 버틸수 있어 달은 기운을 돋아주는 의미”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相生-新月에 들다’라는 제목의 작품엔 얇은 초승달이 채울일만 남은 듯 가느다랗게 허공에 걸렸고, 작품 ‘바람 머문 시간’에선 하얀 보름달이 숲인 듯 허공인 듯 한 잿빛 공간에 희멀겋게 앉았다. 120호짜리 대작 ‘송가월령’에선 초승달과 그믐달이 나란히 걸렸는데, “초승달에서 그믐달까지 한달인데, 하루가 연결돼 한달이 되는거고 한달이 연결돼 1년이 되고 평생이 되는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가자’는 뜻이며 그런 역할을 해준 달에게 감사하는 의미”라고 작가는 전했다.

조광익 작가의 ‘禪을 빚다’(53×53㎝)
조광익 작가의 ‘禪을 빚다’(53×53㎝)

그의 작품엔 이렇틋 작가 고유의 생각과 의미가 소담하게 담겼다. 이에 대해 그는 ‘여경(餘景)산수’라는 용어를 썼다.

“요즘엔 실경산수란 말을 쓰는데 그것은 산수화가 아니라 그냥 풍경화로서, 사실적 풍경화 갖고는 내 생각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예전에는 관념산수라 해서 작가 생각이 들어갈 여지가 있었다. 내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는 어떤 것을 개념정리라도 해야겠다는 고민 끝에 ‘여경(餘景)’이란 말을 찾아냈다. 옛날 선비들이 먹을 쓰고 남은 먹물을 ‘여묵’이라 했는데 거기서 빌려왔다. 산천을 가서 구경하고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끄집어내 그리는 것으로, 일단 산천을 봤으니 ‘실경’이고 내 생각이 삭혀져 나왔기에 ‘관념’인 것으로, 사실과 관념이 융합돼있는 개념이다.”

“관념성이 없으면 산수화가 되질 않는다”고 작가는 강조했다.

“2007년에 공평아트센터에서 ‘인왕산展’이란 대작전(大作展)을 열었는데, 작품을 준비하면서 하도 인왕산을 돌아다녀 전시회가 끝나고도 인왕산만 보이더라. 눈을 감고 있어도 보여 ‘도대체 이게 뭐냐’, ‘머릿 속에 남아있는 경치’ 거기서 캐치해 ‘여경산수’란 말을 썼고 2008년에 처음 작품을 발표했다.”

‘萬物이 깃들다’ ‘물에 임하다’ ‘고요에 이르다’ ‘하나에 이르다’ ‘禪을 빚다’...

작품명제 하나 하나가 사색적이면서 시어(詩語)를 닮았고, 선(禪)사상과 맥이 닿은 듯한 느낌을 준다.

“글씨 자체도, 그림 그리는 것도 하나의 법칙이다. 그런 법칙들이 결국엔 한 점과 통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순행(順行)’이란 표현을 즐겨 쓰는 것에 대해선 “보는 사람들, 감상자들이 작품을 통해 ‘일이 잘풀리고 어려움없이 일생을 살자’고 비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지에 수묵담채로 자연과 인간의 합일(合一)을 표현한 2009년작 ‘산수 분 꽃피다’(420×140㎝×5EA)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있다.

조광익 작가의 수묵담채한지조각 ‘萬物이 깃들다’(65×65㎝)
조광익 작가의 수묵담채한지조각 작품 ‘萬物이 깃들다’(6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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