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리서치기관 CB인사이트, 사례 소개···
부적절 아이템, 못 지킬 약속, 조기 현금고갈,
아이디어 도난, 유행 따르기, 법적 분쟁 등

해외 리서치 기관이 스타트업의 실패 요인을 사례 중심으로 소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유럽의 대표적인 산업박람회인 ‘유로시스 2019’ 전시장 전경으로 본문 기사와는 무관함.
해외 리서치기관이 스타트업의 실패 요인을 사례 중심으로 소개해 관심을 끈다. 사진은 유럽의 대표적인 산업박람회인 ‘유로시스 2019’ 전시장 전경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거래처와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거나, 부적절한 구성원 또는 시장에 사실상 적합하지 않은 아이템으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거의 모두 망할 수 밖에 없다는 해외 리서치 기관의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리서치 기관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신생기업들은 또 부실한 수익모형이나, 애써 발굴한 아이디어를 빼앗기는 경우, 애당초 리더십이나 올바른 오너십이 결여되는 경우 등도 ‘필패’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시장이 아닌, 창업자가 좋아하는 아이템 금물

이는 비록 미국과 영국 등의 실제 사례를 든 것이긴 하지만, 국내의 우리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에게도 적용될 만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 중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이른바 ‘시장 적합성의 결여’다. CB인사이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신생회사가 ‘제품에 대한 시장 수요의 결여’를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즉 시장 요구에 부응하는 아이템이 아니라, 창업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흥미를 가진 아이템이나 주제를 내건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설사 기술이 탁월하다고 해도 성공하기 어렵다. 또 명확한 타깃 마켓을 설정하기도 어렵고, 그로 인해 명확한 사업계획으로 이어지기도 더욱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스타트업들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제품이나 시장 수요가 없는 제품을 제작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수익의 부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부실하거나 막연한 수익 모형은 그래서 창업 기업이 망하는 첩경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후죽순격으로 난립하는 인공지능 또는 머신러닝 분야의 신생기업들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 대다수 AI 신생기업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극히 초보 단계의 제품 완성도를 갖고 섣불리 시장을 공략하기 일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록 실제 고객 수도 적고, 충성도도 매우 낮다. “결국 문닫는 길 외엔 달리 방도가 없다”는게 CB인사이트의 결론이다.

기업과 제품의 막연한 정체성도 문제

또 신생기업의 아이디어는 새로운 시장을 생성할 수 있지만, 시장에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래서 기민하게 시장을 읽어내며,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이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주문이다. 유행하는 사업 모델에 무작정 뛰어들고, 시장 목표도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문제다. 특히 IT업계의 경우는 ‘SaaS’(Software as a Service) 또는 ‘공유기업 모델’ 등을 내세우지만, 정확히 창업 아이템이 무엇이며, 그 소비자층이 어떤 계층이며,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CB인사이트가 든 사례에 따르면 애초 대충 기획했던 사업 모델이 별 효과가 없어서, 얼른 인접 분야로 선회하려 했지만, 그럴 만한 아이템을 찾지 못해 사업을 포기한 경우기 비일비재했다.

이 기관은 또 실리콘 밸리의 용어인 ‘번 레이트(burn rate)’를 인용하며, 현금 고갈을 실패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이는 스타트업이 창업 직후부터 수익을 발생시키기 전에 간접비를 지출하는 속도를 말한다. 즉 일단 회사를 세우면, 직원 급여를 지급해야 하고, 각종 고정비용이 줄지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면 종잣돈마저 빠른 속도로 없어지며, 급기야 수익은 별로 없고 가진 현금만 모조리 날리게 된다. “물론 여러 해 동안 돈을 잃을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일정 시점부터 돈을 벌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현금 소비를 적절히 관리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전제한 이 기관은 “그러나 실리콘 밸리에서 흔히 보듯이, 100달러를 벌었지만, 150달러를 썼다면 번(burn)은 50달러이며, 그 끝은 뻔하다”고 경고햇다.

부적절한 인력과 구성원도 실패 원인

채용된 인력을 포함해 부적절한 구성원 역시 패망의 지름길이다. 물론 적절한 인재는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조직의 능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엔 ‘해고가 좋은 사람을 영입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지적이. 즉 “사람을 잘못 고용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즉시 내보내라. 이들을 대체하기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사무실이나 조직 내의 인간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신생 기업일수록 소규모 팀으로 비즈니스가 이뤄지기 쉬운데, 이 경우 대인 관계나 팀의 역학관계 등은 회사 경영에 절대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충고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많은 스타트업들이 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꼽히곤 한다. 그 ‘약속’은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품질과 기술에 관한 것이다. 즉 스타트업 자신의 기술로 만들거나 수행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호언 장담하거나 과장된 약속을 하는 경우가 그렇다. 또 무조건 ‘최고’라거나, ‘고품질’을 내세우며 거래처를 설득했지만, 기대에 못미칠 경우는 치명적이다. 이로 인해 시장의 평판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신규 거래처 확보에도 지장을 받으면서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법정 소송으로 시간 허비하다 망해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법적 문제에 매달리는 것도 스타트업으로선 실패로 가는 길이다. 예를 들어 제품 명칭이나 상호 등을 둔 분쟁, 혹은 특허, 저작권 분쟁 등이 그런 경우다. 창업 초기부터 이런 문제 휘말리면, 본래의 사업에 전념할 에너지르 소비할 수 밖에 없다. CB인사이트가 드는 사례에 의하면 영국의 한 신생기업은 타사의 코드를 훔쳐 복제한 혐의로 고발되었고, 나중에 합의에 이를 때까지 핵심사업을 제쳐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법정 싸움에 매달렸다. 또 음악 스트리밍 시장에서 권리 침해로 인한 다툼에 시간과 돈을 허비해야 했던 사례도 여럿이다. 이들은 결국 제대로 된 기업으로 출발하는데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섣부른 사세 확장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창업 초기 상이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위치한 지역 혹은 국가의 문화, 시장의 작동 방식, 이에 맞는 사업 실행 방식 등에 대한 치밀한 판단과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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