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 솔로몬인베스트먼트(www.solomonin.com) 대표 현지 취재

워싱턴 디씨 주요 도로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는 주방위군 모습 2
워싱턴 DC 주요 도로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는 주방위군 모습 1
이현철 객원기자
이현철 본지 객원기자

[워싱턴 DC=이현철 중소기업투데이 객원기자] 미국 동부로 여행 오는 한국인들에게 ‘워싱턴 DC는 미국의 몇번째 수도일 것 같냐’고 가끔 물어보면 그래도 미국 역사를 좀 안다는 사람은 필라델피아에 이어 두번째 수도가 아니냐고 대답하는데,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워싱턴 DC는 뉴욕과 필라델피아에 이어 미국의 세번째 수도다. 1791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수도 신설을 위해 워싱턴 지역 땅을 매입한 후, 도시설계사 피에르 찰스 랑팡이 아름다운 정원처럼 미국의 심장 워싱턴 DC를 설계한 것이 그 시초다.

1800년 11월에 완공된 백악관에 처음 입주한 2대 존 애덤스 대통령 이후 워싱턴 DC는 200년 이상 미국 민주주의의 산실로 그 역할을 톡톡히 했고, 특히 4년마다 한번씩 거행되는 대통령 이취임식은 전세계로 생중계되며 모든 사람이 주목할만한 가장 큰 정치적 이벤트로서 손색이 없었다. 재임시절 공과와 상관없이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퇴임하는 전임 대통령의 아름다운 퇴장과 이를 따뜻한 포옹으로 배웅하며 감격 가운데 취임하는 새로운 대통령의 모습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감동의 순간들이다. 국회의사당 서쪽 계단으로부터 백악관을 잇는 펜실베니아 애비뉴를 따라 펼쳐지는 취임식 퍼레이드는 도로 양쪽에 운집한 수십만의 환영인파의 열렬한 환호와 갈채 속에 진행되는 것이 지난 200여년 동안의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이자 관례였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자의 취임식을 하루 앞둔 19일(현지시간) 현재 워싱턴 DC는 예년의 그런 모습을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적군의 기습작전을 방어하기 위해 공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최전방 야전군과 같은 모습들만 있을 뿐이다. 주 방위군 2만5000명이 워싱턴 DC 주요 길목 요소요소를 지키고 있고, 2m가 넘는 임시 철책들과 바리케이트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는 현실을 볼 때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워싱턴 디씨 상점 주인들이 임시로 세워둔 목조보호벽들
만약의 충돌사태에 대비해 워싱턴 DC 상점 주인들이 가게입구에 임시로 세워둔 목조보호벽들

이런 분위기는 워싱턴 DC 근교에서부터 시작된다. 버지니아주에서 워싱턴 DC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인 495번과 66번 도로는 취임식 하루 전날인데도 주방위군과 경찰의 철저한 교통통제를 받고 있어, 북쪽에 위치한 메릴랜드를 경유해 워싱턴 DC로 들어가는 것이 그나마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인데 평소보다 두 배나 시간이 걸린다. 한국 대사관이 위치한 대사관의 거리인 매사츄세츠 에비뉴를 따라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쪽으로 내려가는 도로의 차량들이나 행인들은 Covid-19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평소의 3분의 1 정도로 한산할 뿐이다.

워싱턴 DC 중심부인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가까워오자 한산한 분위기는 점점 험악하게 바뀐다. 곳곳에 삼삼오오 배치된 군인들, 경광등을 켜놓고 대기중인 경찰차들과 비밀경호국 소속 검은색 리무진들, 군병력을 수송하는 군용트럭과 작전차량들, 수십미터 길이로 길게 늘어서 주요 도로 전체를 에워싼 철책들, 백악관 진입로나 주요 연방정부 건물 입구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들과 바리케이트들 그리고 혹시 모를 폭동에 대비해 상점을 보호할 목적으로 주인들이 창문 및 입구에 설치한 목조보호판들을 마주하면서 연상되는 단어는 취임식이 아닌 군사작전 내지는 폭동이다.

차를 세워놓고 차량진입이 철저하게 통제돼 있는 구역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반 이상은 취재를 위해 워싱턴 DC를 방문한 기자들이다. 황량한 거리에서 취재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기자들의 표정들만이 취임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거리에 일반 사람들은 거의 없고 간간히 귀에 헤드폰을 낀 채 이 모든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한 표정으로 조깅하는 청년들만 두 세명 마주친다.

백악관 진입도로 중 하나인 K 스트리트에 설치된 철책과 바리케이트 모습
백악관 진입도로 중 하나인 K 스트리트에 철책과 바리케이트가 설치된 모습

워싱턴 DC에서 10년 가까이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인 제임스 리(61세)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오늘 아침에 출근하는데만 한시간 반이 걸렸다. 몇 일 전부터 도시는 완전히 셧다운된 상태다. 오늘도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아 가게 문을 일찍 닫고 허탕치고 들어간다”면서 “코로나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장사가 안돼 죽을 지경인데, 그나마 반짝 경기를 이끌었던 취임식 경기도 이제는 오히려 매상만 깍아먹는 골칫덩이가 되어 버렸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14번가 근처에서 마주친 히스페닉계 미국인 곤잘레스 알바로(26세)씨에게 워싱턴 DC 취임식 분위기를 물었다. 그는 “취임식이요? 내일 누가 취임한데요?”라며 농담을 건네며 자신을 조지아주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상원의원 선거에서 전통적인 공화당 표밭인 그곳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조지아주 민심이 드러났듯이 트럼프가 부리고 있는 진상(?) 때문에 공화당은 앞으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퇴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꼬집었다.

워싱턴 디씨 주요 도로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는 주방위군 모습 2
워싱턴 DC 주요 도로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는 주방위군 모습 2

전세계에서 최초로 대통령제를 시행하면서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았다고 자부하는 미국 시민들은 주방위군 2만5000명의 삼엄한 경계 속에 점점 고독한 섬이 돼가고 있는 이곳 워싱턴 DC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 지 궁금하다. 바이든 당선인은 40만명이 넘는 Covid-19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링컨 기념관에서 추모의 촛불을 밝히고, 취임식이 거행되는 국회의사당 앞의 넓은 녹지대인 내셔널몰에 20만개의 미국 국기를 설치하고, 50개 주와 6개 미국령을 대표하는 56개의 조명기둥을 설치해 취임식 주제인 ‘하나가 된 미국’을 보여주고자 노력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이 얼마 전 있었던 사상 초유의 국회의사당 난입이 보여준 분열된 미국을 봉합할 수 있을 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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