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복희 부국장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새해 연휴기간 대학 학과 동기생들이 단톡방에서 만났다. 강산이 여러번 바뀔 동안의 세월이 무색하게 “00야, 반가워” “살아있었네” 등으로 시작된 대화방은 수십명이 주고받는 대화로 난리통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신입생시절 MT를 다녀온 다음날 캠퍼스에서 다시만나 뒷얘기를 주고받는 스스럼없고 왁작지껄한 분위기 그대로였다. 그렇게 이틀가량 대화가 이어진뒤 동창회 얘기가 나왔고, 코로나에다 학과 특성상 해외에 사는 동창들이 많아 ‘줌(Zoom)’으로 열기로 했다.

화상으로 여는 동창회 모습이 어떨지 기대된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1년을 끌어온 코로나가 우리 생활과 사회 깊숙이 가져온 변화는 애초 상상치 못했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크다.

수백만년 인류 역사에서 비행기와 컴퓨터 등이 등장한 지난 20세기 100년간의 변화가 원시이래 인류가 걸어온 나머지 시간들의 변화를 통틀어 합친 수준을 상회한다고 볼 때, 변화의 크기와 속도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싶다.

하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있기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의 뇌는 변화의 속도를 어느정도까지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속 1660km로 움직이는 지구의 자전속도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과학혁명이 불러온 변화의 속도를 수용하질 못해 인간의 뇌에 ‘에러’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의 디지털 관련 변화만 하더라도, 중년층 이상은 ‘버그’에 걸린 것 마냥 버벅대며 따라가질 못해 젊은 디지털 세대에 주도권을 내줘야할 형편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안그래도 빠르게 흘러가던 변화에 가속도가 붙은 양상이다. 기존의 국가·기업·개인간 직접적인 교류가 디지털문명으로 급속히 대체되는 모양새다. 일상생활 및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각종 행위 앞에 ‘언택트’(비대면)라는 용어가 따라붙고, 각 주체들 사이에 의도치않게 물리적인 거리가 생긴 가운데 사회·경제적 교류가 디지털에 의존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새해 재계 총수 및 주요 기업 CEO의 신년사를 보더라도 ‘디지털 전환’이라는 용어가 단골로 들어가있다. 재택근무는 일상이 되고, 학교수업도 종교모임도, 동창회까지도 디지털기기에 의존한 언택트로 대체되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변화의 흐름 최전선에 서 있는 만큼 자본과 인력, 기술력을 토대로 거의 본능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해나가고 있다. 이에 비해 조건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과 대면접촉에 기반한 전통적인 영업방식의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대변혁의 소용돌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연차적으로 풀고있긴 하나 ‘언발에 오줌누기’에 다름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나아가 전 지구적으로 활력을 잃어버린 양상이며, 이런 가운데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자 전 세계적으로 뿌려진 돈들이 증시로 몰려 주식시장만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 모든 복합적인 변화의 물결을 기업과 개인, 정부 모두 힘겹게 ‘감당’해 나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 싶다.

다행히도 우리는 위기에 강한 민족적 DNA를 바탕으로 비교적 선방을 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뭔가 ‘2%’ 부족한 감(感)이 드는 것은 왜일까.

통상 이처럼 급속한 변화의 과정에선 빨리 가는 자와 느리게 가는 자, 변화를 쫓아가는 자와 못쫓아가는 자 사이에 거리감이 커지고, 이로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감이 집단적 욕구불만으로 응집돼 사회적 뇌관이 될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이즈음 우리는 지금까지 해오던 것에 더해 무엇을 할 필요가 있을까. 디지털, 언택트다 해서 외형의 변화를 숨가쁘게 쫓아가던 걸음을 ‘잠시 멈춤’하고 안팎의 균형을 살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제대로 또 멀리 내닫기 위해.

뒤처져 느리게 오는 자가 있으면 손을 잡아 ‘함께 가고’, 내 머리와 심장이 작금의 변화의 속도와 파고를 무리없이 감당하고 있는지,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잠시 안으로 돌려 내면을 공고히할 필요는 없는지. 코로나사태로 인해 의도치않게 각각의 ‘섬’이 돼버린 현 시점을 ‘함께 가고’, ‘제대로 가는’ 내면적 성찰의 기회로 삼는 것도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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