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능력개발원 분석
서열화된 교육풍토, 유명대 졸업자 ‘입사 후 곧 퇴사’
'현장 숙련도 낮아 중소기업 경쟁력 저하’

사진은 서울의 한 자치구가 실시한 여성취업박람회로서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서울의 한 자치구가 실시한 여성취업박람회 모습.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발포지 PE폼 포장재를 생산하는 K사 대표 N씨는 “공개 채용 대신, 알음알음으로 사람을 쓰거나 아예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한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1년 전만 해도 Q/C나 생산관리 요원으로 ‘인서울’ 유명대학 졸업자를 어렵사리 채용하기도 했으나, 몇 달을 견디지 못했다. “현장에서 필요한 재능은 물론이고, 일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 적응도 제대로 못하더라”는게 N씨의 얘기다. 종업원 20여 명인 이 회사로선 “괜찮은 수준의 급여(연봉 2500만원)”를 지급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얼마 안가 일을 그만 둔 것이다.

이처럼 고학력 졸업자나 소위 명문대 출신일수록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과는 크게 동떨어진다는 사실도 이런 노동시장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

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 ‘인적자본과 스킬’에서 지적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펴낸 논문형 보고서 ‘인적자원, 인적자본과 스킬’에서도 이런 현상은 데이터로 입증되고 있다. 보고서에서 반가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우선 “핵심과 주변부로 분단된 노동시장이 우리 경제의 치명적인 취약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만약 서열화된 명문대를 가기 위한 엄청난 입시 경쟁과 사교육이 없고,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졌더라면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도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학벌에 따른 서열화나 고학력 지향의 풍토는 개인이 가진 인적자본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즉 생산과정에서 개인의 ‘눈높이’와 맞지 않고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아 역량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다면 그 인적자본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앞서 K사 사례와 같이 중소기업 현장에선 고학력 입사자가 직장 환경에 불만을 가진데다, 필요한 직무능력도 갖추지 못해 단기간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반 연구위원은 그래서 “저스킬의 직무(스킬 수요)에 직면한 고학력자(스킬공급)는 저스킬자인가, 고스킬자인가? 답은 저스킬자이다”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노동시장 양극화, 중소기업 더 어렵게 해

특히 서열화된 대학 구조로 인해 고용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확대 재생산되며 고착된다. 중소기업이나 영세 소기업들은 그 와중에 더욱 노동과 생산성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학벌 혹은 학력 위주의 고용 풍토는 결국 산업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는다는 우려다. 역시 같은 보고서에서 이로 인한 ‘스킬미스매치’도 큰 문제로 제기되었다.

김안국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적 변화와 함께 직무에서의 변화가 격심하게 일어나 대학에서 배운 것이 거의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며 “따라서 ‘스킬 미스매치’ 문제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 분명하며, 특히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그 영향이 치명적”이라고 걱정했다. 그래서 특히 중소기업 고용주나 종사자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스킬 미스매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겉만 번지르한 ‘우수인재’ 스카웃 “금물”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초·중등 단계에서 한국 학생의 역량은 국제비교 관점에서 여전히 최상위권이다. 그러나 성인의 역량은 나이가 들수록 급격히 낮아지고, 일터에서 스킬 연마를 소홀히 하거나, 적절히 활용하지 못함으로써 ‘맨파워’가 약화되고 있다. 그래서 “(학벌과 학력 위주의) ‘우수 인재’ 스카우트에 골몰하거나, 숙련을 경시하는 생산 시스템으로 노동의 스킬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인적자본이 날로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결국 노동력 수급의 불균형은 결국 불합리한 기업 채용문화, 왜곡된 교육 현실, 일터에서의 미숙련 풍토 등이 근본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판단이다. “더욱이 중소기업의 경우는 이런 왜곡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게 문제”라는 지적도 곁들였다. 앞서 K사 대표 N씨도 “내국인 대졸 입사자들은 숙련은커녕 언제 그만둘지 몰라 아예 쓰질 않는다”고 했다. 대신 외국인노동자들로 빈 자리를 메꿀 생각이다.

<참조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THE HRD REVIEW’ 제23권 4호 ‘인적자원/인적자본과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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