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옥타 초청 강연서
분열된 우리 사회 향해 '의미있는 질문'
국가과잉, 격차과잉, 불신과잉이 구조적 문제의 본질
경제적 사회적 가치 동시 추구하는 '비즈 엘리트' 시대
"일반 국민이 솔선 실천하는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희망"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월드옥타 하용화 회장 등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월드옥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왼쪽 네번째)가 하용화 회장(왼쪽 다섯번째) 등 월드옥타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월드옥타]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화두(話頭)’를 던지는 사람이 필요하다. ‘반란’이라, 단어만 들어도 속 한구석이 뚫리는 듯하다. 근데 ‘유쾌한 반란’이라니, 참신하기까지 하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매스컴을 통해 화두를 던지는 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얘기다. 지난 22일 KBS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소신있는 발언을 던졌다. 앞서 지난 9월22일 김 전 총리는 월드옥타(세계한인무역협회) 초청으로 세계 각국의 한인경제인들을 대상으로 화상 특강을 했다. 당시 본인의 발언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그냥 묻어두기엔 아까운 내용이어서 이번 방송출연을 계기로 소개하고자 한다.

1시간 강연과 30분 질의응답으로 진행된 이날 특강의 제목은 ‘대한민국의 유쾌한 반란’ 이었다. 대표적으로 ‘반란’, ‘질문’, ‘문제의 본질’, ‘분열’, ‘고민’, ‘아래로부터(바텀업)’ 등의 단어가 등장했다.

34년의 공직생활과 사립대(아주대) 총장 2년반 등 퍼블릭 섹터에서 36년6개월을 근무했고, 그만둔뒤 “조용히 지내며, 하고싶었는데 하지못했던 일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지방을 다니며 공직에 있을때 만나기 어려운 일반 서민, 농민, 청년, 중소기업인 등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조국 대한민국의 ‘유쾌한 반란’에 대해 답을 제시하기 보다, 함께 고민해보자는 생각에서 이날 강연에 나섰다”고 했다.

우리 경제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본질은,

김 전 부총리는 3가지를 집었다. 국가과잉, 격차과잉, 불신과잉.

먼저 민간 시장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아직도 개발연대의 국가주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례로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규제'를 척도로 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137개국 중 95위로 한참 밀린다. 규제 일변도의 ‘안돼 공화국’, ‘공교육 질식시키기’ 등을 ‘국가과잉’의 증거로 들었다.

‘격차과잉’은 소득 및 자산 격차의 심화, 교육기회의 격차를 예로 들며 상위 10%가 전 국민 자산의 43%를 소유하고, 하위 50%의 자산비중은 12%에 불과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는 부와 사회지위의 대물림, 교육기회의 격차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국민의 90% 이상이 양극화의 심각성에 동조하고 있으며 가장 큰 사회적 화두이자 논쟁거리다.

마지막으로 ‘불신과잉’은 저신뢰 사회를 뜻하며, 사회 구성원간 거래 및 모든 인간관계의 사회적 거래비용을 증가시켜 비효율 사회를 초래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회적 자본의 기본은 신뢰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있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부재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우리 사회 분열의 실체는,

“많은 사람들이 보수 대 진보, 정치 사회 세력간 이념과 철학의 차이를 얘기한다. 우리가 많은 비용을 치르고 극복해야하는 가치와 이념의 차이는 뭘까. 보수와 진보의 ‘참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

김 전 부총리는 “제대로 되지않은 보수는 시장원리를 강조하며 시장만능주의로 간다. 또 어설픈 진보는 시장만능주의를 깨자며 시장원리까지 깨자고 한다”며 “서로가 시장을 존중하며 시장이 안고있는 문제, 즉 시장의 불공정 및 불균형을 해소하는게 참 진보와 보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분열의 실체는 참된 이념과 철학의 차이가 아닌 권력투쟁, 이익투쟁, 기득권 유지와 확대를 위한 투쟁일지 모른다”고 꼬집었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그칠 것이다. 이러하니 어찌 충신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한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 서문 내용을 인용하며, ‘자기를 둘러싼 환경’과 우리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사회를 뒤집는 반란’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 사회의 공동선(善)에 관심을 가지며 각자 위치에서 자기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충신이라고 덧붙였다.

강대국의 조건

김 전 부총리는 ‘혁신’과 ‘포용’을 예로부터 강대국의 공통조건으로 내걸었다.

엘리자베스1세때 변방의 작은 섬나라 영국이 강력한 병력의 스페인과 싸워 이긴 비결은 주철로 된 대포를 만들어 장착한 ‘혁신’에 있었다고 예를 들었다. 과거의 로마, 몽골, 네덜란드에서 오늘날 미국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다.

그는 또 성공국가와 실패국가로 나뉘는 기준의 한가지로 ‘그 나라의 제도와 문화, 관습이 얼마나 포용적인가’를 제시했다.

이어 한국사회를 ‘빨간 금붕어’ 어항이라고 할 때 ‘파란 금붕어’ 한 마리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이때 파란 금붕어는 장애인, 다문화가족, 취약계층 등 소외계층을 가리킨다. “장담컨대 대한민국의 장래는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저 ‘파란 금붕어’를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사회의 5대 화두

국가플랫폼, 비즈엘리트, 역산업정책, 포용플랫폼, 신뢰플랫폼을 김 전 부총리는 5대 화두로 제시했다.

우선 승자독식 구조를 개선하고 소수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우리 정치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 거버넌스가 새로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무한경쟁시대 교육시스템이 배출한, 철밥통에 연연하는 ‘시트(Seat) 엘리트’는 더 이상 필요없는 세상이 왔다”며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비즈(Biz) 엘리트’로 대체될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그는 또 “어떤 사업이 경제를 주도할지 예측하고 자원을 쏟아부으며 육성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민간주도의 역산업정책을 강조했다. 어떤 산업이 미래 먹거리인지 결정하는 일은 민간에서 이뤄질 일이며 정부의 할일은 생태계조성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자본의 확충을 위한 신뢰플랫폼 구축 또한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코리아 컨센서스’가 이뤄져야하는데 힘의 불균형 상태에선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이에 지도층, 더 가진 사람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지방을 다니며 지역사회 현장에서 ‘스몰딜’ 즉 양보, 상생,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지금까지의 톱다운 방식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 솔선하고 실천하는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통해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기업을 향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는 “앞으로 경제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지속가능할 것”이라며 “대다수 소비자들은 해당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추구하고 있느냐 볼 것”이라고 밝혔다. 가격과 품질에 더해 가치소비가 제품선택의 기준으로 얹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과거, 이익의 일부를 기부하던 차원에서 나아가 아이디어 단계부터 생산, 서비스 등 전 과정에 걸쳐 사회적 가치를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김 전 부총리는 올해 1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출범, 매달 기업 CEO들을 모아 젊은 사람들을 강사로 초빙해 강연을 듣는 ‘소셜 임팩트 포럼’을 열고 있다. 기업활동으로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포럼의 목적이다. 정회원과 파트너회원들이 있는데, 대기업들이 많이 들어오려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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