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질랜드의 고사리 ‘실버펀(Silver fern)'
[칼럼] 뉴질랜드의 고사리 ‘실버펀(Silver f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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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태 북경화쟈대학교 겸임교수
박춘태 교수
박춘태 교수

뉴질랜드에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 필자는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집 근처에 있는 한 카페로 정했다. 직원이 메뉴판을 내밀면서 주문을 요청했는데, 달지 않고 부드러운 커피를 원한다고 말하자 ‘플랫 화이트(flat white)’를 추천해 줬다. 살짝 웃으며 자랑스럽기라도 하듯 이 커피의 원조가 뉴질랜드라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개발한 커피! 잠시 후 가져 온 커피를 살펴 보았다. 바로 그 때 커피 표면에 큰 나뭇잎 하나가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뜸 친구는 나뭇잎의 이름을 맞춰보라고 했다.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고사리 식물인 ‘실버 펀(Silver fern)’이라고 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카페에서 매번 플랫 화이트를 주문할 때 늘 같은 무늬의 실버 펀이 그려진다고 한다. 플랫 화이트에만 그려지는 단골 그림인 셈이다. 플랫 화이트의 원조가 뉴질랜드라는 점과 실버 펀이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식물이라는 점에서 뉴질랜드인들은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고사리는 큰 군락을 만들어 전세계에 자생하는 생활력이 강한 식물이다. 그 중 실버 펀은 뉴질랜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산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원시림을 이루는 경우도 있으며 종류만 해도 무려 200여 종이 있다. 고사리의 생명유지력은 놀라울 정도로 장구하다. 3억년 이상을 생존해 온, 가장 오래된 생명체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고사리가 뉴질랜드에서는 특별한 존재로 부각돼 왔다. 그 가운데 ‘실버 펀’은 특이한 점이 있다. 색깔 면에서 보면, 고사리 잎 앞면은 짙은 녹색으로 돼 있으나 뒷면은 은색으로 돼 있다. 성장면에서는 높이가 무려 10미터에서 20미터까지 자라며, 잎의 크기는 4미터에서 7미터까지 자란다. 이 때문에 크기가 야자수처럼 큰 것도 있다. 그야말로 거대 고사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실버 펀이 뉴질랜드에서 인기몰이를 한 영향으로 많은 영역에 활용되고 있다. 주요 용도로는 뉴질랜드 화폐, 뉴질랜드 여권, 뉴질랜드 항공로고, 문신, 각종 스포츠 국가대표팀 유니폼 등에서이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 정착한 시기는 11세기경 이었다.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족 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런 현상은 분쟁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전쟁이 잦았다. 그 와중에 그들은 낯선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있는 밤을 틈타 이동을 하곤 했는데, 곧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 역할을 하는 도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이동 도중에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숲속을 가로질러 이동해야 할 경우,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나뭇가지에 걸리고 돌부리에 넘어지는 일이 잦았다. 전사들은 늘 상처 투성이였다. 무엇보다도 어두운 길을 밝히는 불빛이 필요했다. 하지만 불빛이라곤 달빛만 유일했다. 달빛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이동 후 돌아오는 지름길을 몰라서 여러 경로를 경유해 오거나,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전사들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거나 적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족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사들과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전사가 우연히 고사리 잎의 은색 부분을 달빛에 비춰보았다. 그는 ‘와!’하고 큰 소리를 질렀다. 모든 전사들의 이목은 소리나는 곳으로 집중돼 황급히 달려갔다. 어찌된 일인가. 달빛에 반사된 실버 펀이 야광물질처럼 빛이 나는 게 아닌가. 휘파람 소리를 내는 등 몰려드는 환호소리에 일대는 일순간 축제 분위기였다. 마오리족 전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 밤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으로 지나가는 곳마다 실버 펀을 떨어뜨렸다. 그 결과 캄캄한 밤에도 숲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귀향할 수 있었는데, 실버 펀이 가로등 역할을 했다.

뉴질랜드 여권을 보자. 여권 앞 표지에 독특한 디자인이 새겨져 있다. 실버 펀이다. 뉴질랜드 비자 가운데 신기한 이름을 가진 비자가 있다. 실버 펀 이름이 들어간 비자다. 이 비자는 2010년 3월부터 시행되었는데, 기술을 가진 외국 젊은이에게 부여하는 비자로 ‘실버 펀 비자(Silver Fern Visa)’라고 불린다. 실버 펀의 인기몰이는 실로 엄청나서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려 한다. 뉴질랜드 국기는 호주 국기와 상당히 비슷하다. 그렇기에 외국인들은 크게 차이점을 느낄 수 없다. 유니온 잭은 같으나 남십자성이 호주 국기에는 5개가 있는 반면, 뉴질랜드 국기에는 4개가 있다. 따라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얼른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관계로 국제 경기에서 호주 국기와 뉴질랜드 국기를 완전히 펴지 않은 채 게양을 하면 똑같은 국기를 게양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더군다나 양국 국기가 바람에 흔들릴 경우 구분하기가 더욱 힘들다.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몇 년전 새롭게 뉴질랜드 국기를 바꾸려는 노력을 전개한 적이 있다. 이 때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기 디자인 공모가 이뤄졌는데, 실버 펀(silver fern)이 포함된 디자인이 가장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뉴질랜드에 국제 럭비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시내는 거대한 응원물결을 이룬다, 온통 축제 분위기로 화합과 단결을 연출한다. 특히 뉴질랜드 국가대표팀 올 블랙스(All Blacks)를 위한 응원은 열광적이다. 실버 펀의 깃발로 넘친다. 또 실버 펀이 그려진 검정색 바탕에 하얀 색 응원복을 입는다. 이처럼 실버 펀은 대중적이면서 국가적 아이콘이다. 이런 연유에서 뉴질랜드 스포츠 대표팀은 공식 마크 또는 이름으로 실버 펀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예로, 럭비 국가대표팀인 ‘올 블랙스(All Blacks)’를 비롯하여 하키 대표팀인 ‘더 블랙 스틱스(the Black Sticks)’, 크리켓 대표팀인 ‘더 블랙 캡스(the Black Caps)’, 넷볼팀인 ‘실버 펀(Silver fern)' 팀 등이 있다. 실버 펀의 또 다른 가치를 보자. 제품에 실버 펀 마크가 새겨져 있다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품질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실버 펀’마크 허가는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제품에만 사용이 허가된다. 이렇듯 뉴질랜드의 고사리 ‘실버 펀’의 용도와 가치는 실로 광범위하다. 실버 펀이 옛날 마오리족 전사들의 밤길을 밝혔듯, 다민족이 함께 신뢰하며 공존공영하는 지혜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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