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이고 복잡한 서류절차,
매출액·급여 확인 가능한 국가전산망 외면
···"서류조작 부추겨"

취업박람회에서 구인 게시판을 살피고 있는 취업 지망생들.
취업박람회에서 구인 게시판을 살피고 있는 취업 지망생들.

[중소기업투데이 이종선기자] “앓느니 죽는다고들 하죠. 고용유지지원금인가 뭔가, 그걸 힘들게 받느니, 그냥 직원 내보내기로 했어요.”

작은 편집기획사를 운영하는 P씨는 최근 간행물이나 단행본 디자인과 조판을 담당하는 직원을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 회사 사정이 너무나 어려워 월급 주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자 고용노동부 고용안정센터 창구를 찾았으나, 그냥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절차와 서류가 너무나 복잡했다”는 P씨는 “저희처럼 직원 2~3명을 두고 있는 작은 사업체로선 서류나 요구 조건을 맞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차라리 이 난국에 새로 거래처 뚫고 회사 운영하는게 쉽지, 그런 걸(지원금 절차) 챙기는 건 더 힘들 것 같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추석 전에 직원을 해고할 수 밖에 없었다.

복잡한 수령 조건으로 포기 사례 많아

이런 사례는 P씨 뿐만이 아니다. 이처럼 비현실적이라고 할 만큼 복잡한 고용유지지원금 수령 조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소기업이나 사업주들이 많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일정 기간 고용주가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부가 휴업 내지 휴직 기간의 임금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이를 위해 사업주는 휴직 혹은 휴업 계획서를 비롯해 근로계약서 직전 3개월 급여내역서 또는 급여 이체 증빙 서류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 15% 이상 감소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 그리고 휴직 혹은 휴업 예정인 당사자의 동의서 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휴업이나 휴직은 하루치(일당) 최고 6만6000원 한도에서 평균임금의 70%를 지불하되, 1개월 단위로 계산된다. 주5일 근무제 사업장은 20일치 안팎이 보통이나, 근로형태에 따라선 최고 30~31일치까지 지불된다. 한 달 지원금을 받은 후 다음 달 또 받으려면 처음 제출한 모든 서류를 또 다시 챙겨야한다. 필수 서류만 7~8가지다.

영세 사업장 현실에 맞지 않는 절차와 요건

문제는 요구되는 서류가 영세 사업장의 현실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직전 3개월 간의 급여의 경우, 이미 지원금 신청 시점 이전에 급여가 대폭 삭감되었거나, 심지어 급여를 주지 못하고 있는 상태도 많다. 지원금 기준이 되는 직전 3개월 간의 평균임금이 그 만큼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또 스타트업의 경우 ‘매출액 20% 이상 감소’의 비교 대상이 되는 ‘전년도 같은 기간’에는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 원칙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쓰는게 마땅하나 적지 않은 자영업체나 소기업에선 이를 엄격하게 지키지 않는 사례가 많다. 이 경우 물론 사업주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작 사람을 해고할 만큼 어려울 때 그런 이유로 지원금을 못받게 하는 건 지나치지 않느냐”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민원인을 한층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절차다. 매출액 삭감이나 임금 지불 내역 등은 4대 사회보험료 납입 상황, 부가세 납부 현황 등을 통해 전산상으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함에도 일일이 오프라인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수 개월 전 고용유지지원금을 수령한 적이 있다는 L씨는 “세무서나 보험공단, 거래은행 등을 뛰어다니며 서류를 정말 어렵게 챙겨서, 천신만고 끝에 받을 수 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국세청이나 건강보험공단 등의 전산망을 통해 조회하면 대부분 파악될 수 있는 자료들”이라며 “말로만 IT강국이냐”고 항변했다. 휴직수당의 경우 최대 180일(6개월) 동안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매월 신청때마다 똑같은 서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한 두달 지원을 받아본 사업주들 중 많은 수는 아예 추가로 신청하지 않고, 그냥 직원을 해고하거나 감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허위·부정 수급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서류를 조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산망을 통한 투명한 감시체제가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어, 오프라인상에 급여명세나 매출액 상황을 허위로 조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고용부는 “부정한 방법으로 수령한 경우엔 각종 지원금 제한 등 법적 제한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아날로그식 행정 절차가 도리어 허위나 부정 수급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앞서 어떻게든 해고를 피해보려고 했다는 P씨도 “마음 같아선 적당히 서류를 꾸며서라도 끝까지 지원금을 신청해볼까 했으나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고용부 지원 창구에서 이런 번거롭고 비합리적인 절차에 대해 항의도 했지만, ‘그건 윗선에 따질 문제’라는 실무 담당자의 대답만 듣고 포기했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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