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안 국회 제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방지
총수의 계열사 지분율 낮추고,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담아

사진은 크고 작은 기업체들이 몰려있는 서울 상암동 DMC 거리 모습으로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크고 작은 기업체들이 몰려있는 서울 상암동 DMC 거리.

[중소기업투데이 이종선 기자] 아크릴 가공업체인 O사는 요즘 비말 차단용 아크릴 가림막 주문이 쏟아지면서 눈코뜰새 없다. 코로나19가 지난 8.15광복절 이후 재확산세를 보이면서 수 십 건의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회사의 K대표는 그러나 마냥 기뻐하기보단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보다”며 몇 달 전의 황망한 일을 돌이켰다.

O사는 작년부터 한 대기업의 1차 밴더업체로부터 재하청을 받고 아크릴 패널을 대량 납품해왔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다음 분기부터는 원청업체 그룹 계열사가 맡기로 했다”는 1차 밴더업체의 통보가 날아들었다. 졸지에 덩치 큰 일감이 끊기고, 수금도 채 안돼 자금줄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코로나19 덕분(?)에 생각치도 안했던 주문이 밀려들면서 당장 직원들 월급은 줄 수 있지만, 여전히 앞날이 불투명하다”는게 K대표의 말이다.

영세업체 발주 물량, 갑자기 계열사로 돌리기도

이처럼 대기업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악습을 근절하고, 공정한 시장질서와 함께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논란이 뜨겁다.

상법에선 새로 ‘다중 대표 소송제’를 도입,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를 간접적으로 방지하도록 했다. 현행 상법에선 계열사 혹은 자회사의 이사가 일감을 받아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모회사 및 모회사의 주주에게 피해를 끼칠 경우도 해당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없었다. 다시 말해 재벌이나 대기업 집단의 대주주가 자회사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 이를 빌미로 일감을 몰아갈 경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다. 즉, 일감을 몰아서 맡긴 모회사에 손해를 끼쳐도 책임에서 자유롭다 보니, 마음놓고 일감을 몰아주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중소기업이나 영세 제조업체에 가야할 일감을 쓸어가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이에 개정된 상법은 ‘자회사의 이사가 임무 해태 등으로 자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모회사 주주도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현행 상법상 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고 명시했다.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를 방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상장계열사 총수 지분율 30%→20%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 역시 ‘총수 일가와 신규 지주회사의 계열사 지분규제 확대’ 조항을 두고,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를 위해 상장 계열사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지분을 20%로 낮추었다.

현재는 총수 일가가 지분 30% 이상(상장사 기준)을 가진 계열사를 사익 편취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즉 그런 계열사에 대해선 모회사(혹은 총수 일가)가 일감을 몰아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재벌그룹 상당수가 이런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 총수 일가 지분율을 30% 미만으로 유지하며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보도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2014년까지만 해도 총수 일가(정몽구·정의선) 합산 지분율이 40%를 훌쩍 넘었으나, 공정거래법이 ‘30% 기준’으로 강화하자 그에 조금 못 미치는 29.99%로 지분율을 끌어내리는 꼼수를 쓰며 일감을 몰아주곤 했다. 이에 이번 공정거래법은 기존의 기준 지분율을 30%에서 20%로 낮추었다. 계열사 간 ‘짬짜미’나 내부거래를 할 수 있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더 낮춤으로써 일감 몰아주기를 못하게 한 것이다.

재계 격렬히 반발 vs “궁색한 기득권 주장”

이를 두고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경련과 재계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계열사 지분율을 낮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선 “계열사 거래가 위축됨으로써 효율이 하락된다”고 했고,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 대해선 “투기 자본의 소송 남발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또 보수 언론들도 이런 재계의 주장을 두둔하며, 연일 개정된 공정거래법과 상법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와 보수언론의 이런 주장은 궁색해보이기까지 한 강변이라는 지적도 사고 있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 방지책에 대해 “계열사 거래를 위축시켜 효율이 떨어지고, 규제를 피하려고 지분을 매각하면 시장이 사업 축소·포기로 판단할 것”이라며 다소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펴기도 한다. 특히 소기업이나 영세 제조업체 현장에선 “대기업 자기네 식구들끼리 일감 몰아주기는 불공정 중의 불공정”이라며 이번 개정안을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앞서 아크릴 가공업체의 K대표는 “아마 그 회사(거래 대기업) 내부 거래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패널을 계속 납품하면서 코로나 방지 가림막도 만들고 해서 모처럼 회사 형편이 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한편 이런 내용의 상법과 공정거래법은 금융그룹감독법과 함께, 이른바 ‘공정경제 3법’으로 불리며, 지난 8월2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후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그 동안 법 통과에 부정적이던 ‘국민의 힘’도 최근 ‘협치’ 가능성을 표명하면서 21대 국회 처리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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