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환 중소기업투데이 편집인
"떠날 때를 아는 아름다운 뒷모습 보여주길"

장영환 본지 편집인
장영환 본지 편집인

[중소기업투데이 장영환 기자] 이형기 시인의 대표작 '낙화'라는 서정시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만 6년간 KB금융그룹 최고 경영자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올 11월 세번째 연임에 도전하는 윤종규 회장이 한번쯤 음미해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윤 회장은 過(과)보다 功(공)이 분명히 많은 대표적인 금융CEO다. KB금융그룹은 그가 부임하기 전까지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간에 심각한 지배구조 갈등을 겪고 있었고 그 와중에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등 한마디로 난파선 같은 형국이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윤 회장이 직원들과 소통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KB금융은 다시 ‘원 뱅크’로 뭉칠 수 있었고, 최고 경영자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지배구조가 확립되고 M&A 등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통해 그룹 외형을 확장하고 리딩 뱅크 자리를 탈환할 수 있었다.

장기집권 체제를 갖춘 윤 회장이지만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 누나 외손녀와 일부 사외이사 자제 채용비리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았고, KB은행 노조의 퇴진 시위에 시달려야만 했다.

검사였던 장녀가 ‘공문서 위조’ 혐의로 재판받고 불명예 퇴직한 일도 있었는데 선고유예라는 예상치 못한 가벼운 형량이 선고되자 시민단체·울산지검 현직 검사 등 일부 인사들이 “KB금융 참모들이 검찰 윗선과 접촉해 형량을 줄였다”고 의혹을 제기해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윤 회장 본인이 강하게 고사하지 않는 한 KB금융그룹 차기 회장에 세번째로 연임이 확실한 것으로 보고있다. 며칠 전 발표한 회장후보 숏리스트를 보면 윤 회장과 윤 회장 밑에 있는 일부 계열사 대표 등 4명으로 확정된 것을 보더라도 당연하게 선임될 전망이다. 그와 친분이 두터운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회장후보 추천위원회’가 이미 그런 쪽으로 대세를 몰고 가는 ‘시나리오’를 발동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이 만 9년간 KB금융그룹 수장을 맡게 된다면 5년 대통령 단임제와 비교하더라도 엄청난 장기 집권이다. 일각에서는 핵심 참모들이 향후 3년간 자리 보존을 하기 위해서 윤 회장 보다 더 적극적으로 세번째 연임을 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KB금융그룹의 발전이나 국내 금융계의 변화·개혁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는 의견이 금융권의 말없는 다수의 생각인 것 같다.

무리하게 3연임을 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체제에 대해 좋은 평가 보다 부정적 평가가 훨씬 많은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반면에 고령이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한 김지완 BNK금융지주회장은 본인 스스로 3연임을 못하도록 ‘CEO 승계규정’을 고치면서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길목을 원천 차단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자신의 상황과 위치를 봐서 물러날 때를 정해야 한다는 공성신퇴(功成身退)라는 말이 나온다. 영화제목도 있었지만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얼마 전 한 금융시민단체가 금감원 민원실에서 KB금융그룹의 푸르덴셜 자회사 인수를 기각하고 윤종규 회장을 파면해 달라고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단 한 군데서도 기사화되지 않았다. 윤 회장의 3연임을 강력히 바라는 KB금융그룹 인사들의 충성심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던 것 같아서 씁쓸한 여운을 남기게 하는 대목이다.

박진회 한국시티은행장은 지난 6년간 한국시티은행을 성공적으로 구조조정하고 수익에도 기여해 3연임이 유력시됐으나 본인 스스로 8월초 퇴진했다. 윤 회장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박수칠 때에 떠나는 용단과 혜안을 윤 회장에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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