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하도급법 대폭 개정···‘분쟁 협의권자에 중소기업중앙회 포함’
하청업체 협상력 높여, ‘법원 자료제출명령제’도 도입···10월5일까지 입법예고

원청업체의 횡포를 막기 위해 현행 하도급법을 큰 폭으로 고친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었다. 사진은 소규모 철 주물체가 밀집한 문래동 철물공단.
원청업체의 횡포를 막기 위해 현행 하도급법을 큰 폭으로 고친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사진은 소규모 주물업체가 밀집한 서울 문래동 철물공단.

[중소기업투데이 이종선 기자] 덕트(대형 환풍기의 일종)를 비롯한 알루미늄 기자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H사(경기도 포천시)는 원청업체의 가격 후려치기와 납품대금 지연으로 늘 힘들어한다. 특히 코로나 시국 마저 겹쳐 최근엔 직원들의 급여를 ‘할부’로 지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형편이다.

대표 최 모씨는 “단가 후려치기도 그렇지만 서너 달 이상 지나도록 납품대금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원청업체인 대기업 뿐만 아니라 1차 벤더(하청업체)가 원청업체로부터 돈을 받고도 우리한테 지급을 미루는게 관행처럼 돼있어 더욱 힘들다”고 말했다.

‘비교적 큰 폭의 개선안 담은 개정안’ 평가

비단 H사 뿐 아니다. 이처럼 대기업 등 원청업체에 목을 매고 있는 중소 하청업체 혹은 재하청(2차· 3차 벤더) 업체들은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당국의 제재나 개선책도 숱하게 나오고 있고, 하도급 관련 법제도를 여러차례 개정, 개선했음에도 좀체 시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24일 비교적 큰 폭의 개선 방안을 담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개정안을 내놓고 입법예고에 들어갔다. 그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하도급 대금 조정의 폭을 늘리는 등 지금까지 나온 개선책에 비해선 꽤 진척된 내용이라는 평가도 없지 않다.

공정위가 내놓은 개정안은 ▲현행 중소기업협동조합 외에 중소기업중앙회를 하도급대금 조정협의권자에 포함하고 ▲공급원가 하락을 전제로 한 단계적인 단가 인하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않은 사정으로 공급원가가 하락하지 않은 경우 등도 조정 신청사유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 밖에도 ▲피해 입증을 위한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제 도입 ▲중소기업의 과징금 분할납부 요건 완화 등도 담아 24일부터 오는 10월5일까지 입법예고하고 있다.

하도급 조정 협의권자에 중소기업중앙회 포함

현행 법령은 하도급업체가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통해 원사업자(원청업체)에게 하도급대금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중소기업협동조합 종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협동조합의 하도급 분쟁 담당 직원 수는 평균 3.1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로 인해 원청업체를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협동조합의 협상력이 떨어져 대금조정 협상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9년 하도급 서면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급 사업자가 대금 조정을 신청한 사례 중에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활용한 경우는 0.9%에 불과했다.

이에 개정안은 중소기업중앙회를 새롭게 조정 협의권자에 포함시켰다. 중앙회의 경우 중소기업 관련 연구 및 조사 기능을 수행하고 표준원가센터를 운영하는 등 대금조정 협의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제 새로 도입

개정안은 특히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제를 새로 도입했다. 이는 주로 하도급 분쟁이 발생하고 하청업체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경우에 해당한다. 이때 납품대금 지연이나 가격 왜곡 등 하도급 업체가 원청업체의 부당한 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었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원청업체에 대해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에 따라 손해 및 손해액 입증에 반드시 필요한 자료 등을 요청할 수 있으나,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개정안은 법원이 사업자에게 제출을 명령하게 하는 한편, 영업비밀을 이유로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한편 중소기업들은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 등을 어긴 경우 거액의 과징금 처분을 당하고, 이를 납부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를 감안해 개정안은 중소기업의 경우 과징금 분할납부 요건이 되는 과징금 금액을 현행 ‘10억원 초과’에서 ‘5억원 초과’로 완화하기 위해 과징금 분할납부 근거조항을 신설하고 구체적인 요건은 시행령에 위임했다. 다시 말해 종전엔 10억원을 넘어야 분할 납부가 가능했으나 개정안은 그 하한선을 5억원으로 낮췄다.

“중소 하청업체, 실질적 권리 구제 가능할 것” 기대

공정위는 이런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이번 하도급법 개정안이 확정·시행되면 하도급대금 조정협의가 활성화돼 하도급업체의 협상력이 높아지고, 손해배상제의 보완을 통해 피해기업이 보다 용이하게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 하도급업체가 보다 폭넓은 사유로 하도급대금 조정을 신청할 수 있고 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해서도 조정 협의를 진행할 수 있게 해 하도급업체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을 통해 피해기업의 손해 및 손해액 입증 부담을 완화시키고 실질적인 권리 구제가 용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관계 부처, 이해 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한 후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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