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오블리주 실천한 이종구 전 리즈패션 회장
400억원짜리 회사 통째로 직원들에게 넘겨
역이민자 및 국내로 사업장 옮긴 한상들 위해
월드옥타 서울지회 설립 필요

수백억 가치의 회사를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종구 전 리스패션 그룹 회장을 여의도에서 만났다.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장보고’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이종구 전 리즈패션 그룹 회장. 그에게선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진정한 선비이자 경영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다수 창업자들은 자신이 키운 기업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은퇴할 시점을 놓쳐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사친회비(등록금)가 6개월이나 1년씩 밀리면 “어머니께서 장을 보고 난 뒤 주신다고 했어요”라고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보니 ‘장보고’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그런 그가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생활을 하다가 대한항공, 대우건설, 한양건설 등에서 20여년간 건설맨으로 중동과 아프리카를 누볐다. 이어 40대 초반에 한양건설 영국지사장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던 중 본사의 해외건설면허가 취소되는 바람에 영국에 눌러앉게 됐다. 호구지책으로 그의 아내는 떡집을 운영해 생활비를 보탰고 그 역시 한국산 목걸이와 귀걸이 등을 수입해 팔면서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안경과 가발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진정한 의미의 ‘장보고’로 우뚝 서게 된다. 장보고는 신라시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한 역사 인물.

“사업을 하면서부터 ‘70세에 은퇴한 뒤, 회사는 직원에게 돌려준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돈을 번 것도 건물을 사게 된 것도 모두 직원들의 노고가 뒷받침된 것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리즈패션의 연매출 400억원에다 브랜드가치, 경영권 프리미엄을 생각하면 수백억원은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2014년 그의 나이 70세에 이르자 직원들에게 모두 공짜로 나눠줬다. 3명의 자식들 역시 아버지의 이런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런 결정에 앞서 그는 2009년 기업경쟁력강화와 함께 팀별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사장제(팀별)시스템을 도입했다. 팀별 성과를 바탕으로 이익의 절반은 회사에 넣고 나머지는 담당 팀에서 가져가는 구조다. 5년의 실험기간을 거쳐 리즈패션을 체인스토어·가발·스카프·안경 부문 등 4개사로 분사시킨 뒤 팀장에게 넘겼다. 하루아침에 팀장들이 부문별 사장이 되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재고 40여만 달러어치도 넘겼어요. 장사를 할 물건이 있어야 하니까요. 조건이라면 회사를 성공시켜 은퇴할 때는 자식들에게 넘기지 말고 사회에 환원시켜달라고 당부했어요.”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실천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통한 선순환구조를 요구한 것이다. 현재 그가 분사시킨 4개 회사 가운데 2개는 안정적 기반을 마련해 향후 성장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나머지 2개 회사는 아직도 정상궤도를 달리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평가했다.

영국에서는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 등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학비를 못내는 학생들이 도중에 하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가 자선재단인 글로리재단(Giory Foundation)을 설립한 이유다. 이 재단을 통해 수년간 가난한 한국 유학생들에게도 적지 않은 장학금을 후원하기도 했다. 물론 노후 선교사업도 감안한 선택이다. 현재 베트남에 있는 부동산도 처분해 선교사업을 하겠다는 포부다.

현재 월드옥타(세계한인무역협회)고문이기도 한 그는 월드옥타 서울지회 창립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옥타가 1981년도에 창립됐는데 당시의 환경과 지금의 환경이 너무나 다릅니다. 그때 청년 옥타인들이 이제 은퇴의 나이에 이르러 한국으로 역이민을 하고 있습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이들의 자산을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지요. 정관상 여러 장애물이 있지만 전향적인 검토를 통해 은퇴자는 물론, 해외에서 사업을 하다가 일터를 국내로 옮긴 청년사업가들도 포용하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월드옥타는 전 세계 68개국 141개 도시에 지부를 가진 단체로 7000여명의 회원과 2만5000여명의 차세대를 보유한 국내 최대의 한인경제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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