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삼영의 ‘기술’, 현대重 ‘탈취’
과징금 10억 얻어맞고 법적대응 예고
다윗과 골리앗 싸움인 MK에도 승리

충남 공주에 위치한 삼영기계 본사.
충남 공주에 위치한 삼영기계 본사.
한금태 삼영기계 회장
한금태 삼영기계 회장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난 2018년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현대중공업이 선박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실린더·헤드를 납품해온 삼영기계의 기술을 탈취해 제3업체에 양산하게 하고 삼영기계에는 납품단가 인하 요구, 거래 단절 등 ‘갑질’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이런 갑질은 2년 만에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2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법상 기술유용 혐의로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70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간 기술유용 혐의로 부과된 과징금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삼영기계의 기술을 다른 협력업체로 빼돌렸다는 얘기다. 이에 앞서 해당 기술유용 혐의를 받는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등 임직원 4명은 검찰 수사를 통해 현재 대전지법에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올해 창업 45년의 역사를 가진 삼영기계는 이번 현대중공업과의 분쟁 이외에도 한편의 드라마 같은 곡절을 겪었다. 90대년 초 미국의 MK레일사(이하 MK)와 벌인 소송전이 그렇다.

당시 MK는 삼영의 최대 고객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삼영기계를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삼영이 제작한 실린더라이더의 하자로 MK가 미국의 기관차에 납품한 모든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이때가 1994년이다.

당시 MK가 제기한 소송금액만도 200만 달러였다. 연매출 70억원에 불과한 삼영이 MK와 법정소송에서 진다면 삼영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판이었다. 1999년 선고를 앞둔 상태에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국에서는 IMF까지 터졌다. 삼영의 앞날도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렸다.

이와 관련 2013년 9월, 한금태 삼영기계 회장은 인간개발연구원 주최 조창강연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들려줬다. 5년간의 공방 끝에 1999년 4월1일 마지막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이어 셋째 날에도 상대의 공격에 삼영을 일방적으로 몰렸다. 상대측은 모두 실린더 내면의 표면이 거칠어 문제가 생겼다고 일관되게 주장한 상태였다.

더 이상 삼영이 내놓을 카드는 없었다. 삼영이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저는 매일 재판이 열리는 동안 법정에 앉아 ‘하나님!, 저들이 옳거든 저들의 손을 들어주시고 우리가 옳거든 우리의 손을 들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3주째 되던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삼영기계 측 전문기술자가 상대의 실수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자료를 찾아낸 것이다.

“MK측이 우리에게 실린더 표면이 거칠어 문제를 일으키니 표면을 계속 매끄럽게 가공하여 오라고 3차례에 걸쳐 요구해 그렇게 했는데, 상태는 더욱 악화됐던 것입니다. 즉 MK에서 납품했던 엔진제작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실린더의 표면이 너무 고와지면 스카핑이나 스크래치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삼영측이 잘못 된 것입니까.”

당시 MK측 변호사는 당황했고 말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삼영은 반전의 기회를 잡아 승소로 이끌어냈다. 당시 국내 언론은 ‘다윗이 골리얏을 무너뜨린 쾌거’라고 보도했다.

“당시 재판에는 구조해석을 전문으로 하는 기술자 10여명이 참석했는데, 상대측 최고기술자가 10분간 휴식하는 사이에 우리 아들(현 삼영기계사장)에게 ‘당신들 참 기술이 좋다. 나는 당신들 기술에서 크게 배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생 기술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삼영기계는 엔진용 피스톤 분야에서 세계 3대 업체로 최근 ‘강소기업100’에 선정되는 등 철도, 선박, 내륙 발전소용 중속 엔진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피스톤과 엔진헤드는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분쟁 역시 삼영기계가 공룡이나 다름없는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싸움을 건다는 것 자체가 ‘무모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삼영은 확신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이 건강한 국내 대중소기업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도 한몫했다.

이번 공정위 조사결과에 대해 한금태 삼영기계 회장은 “공정하게 심판해준 공정위에 감사하다”며 “이제는 중소기업도 정정당당하게 맞서야 하는 시대에 와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은 하도급업체인 삼영기계에 피스톤 관련 부품에 대한 보완을 해야 한다며 기술자료를 요구한 뒤 이를 확보해 2015년 경쟁업체인 A사에 넘겼다. 피스톤은 선박 디젤엔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으로, 삼영기계가 2005년부터 현대중공업에 납품해왔다.

A사가 피스톤 개발을 완료하자 현대중공업은 삼영기계에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이런 현대중공업의 압박에 삼영기계는 2015년 1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단가를 11% 낮추어야 했다.

결국, 2017년이 되자 현대중공업은 삼영기계와의 거래마저 중단시켰다. 대신 현대중공업은 A사 등 다른 업체로부터 피스톤을 납품받았다. 공정위는 “이로 인해 삼영기계의 2018년 매출액은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던 2015년과 비교해 57%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579% 줄어들었다”며 막대한 경영상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피스톤 자료제출을 요구한 이유에 대해 “제품 하자 발생에 따른 대책 수립 목적”이라며 “A사에 제공한 자료의 경우 삼영기계 자료도 아닐뿐더러 피스톤 관련 사양 등이 담긴 단순 참고자료에 불과해 ‘기술자료’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며 “공정위에서 의결서를 받으면 검토 후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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