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마진’ 거래, 덤핑, 고액 일당, 원청업체 ‘갑질’ 등
고질적 행태로 시름

[중소기업투데이 이종선 기자]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어느때보다 깊다. 특히나 직원수가 몇 명 안되는 영세 소기업들은 기존의 부조리한 거래관행과 늘어만 가는 인건비 등 비용부담을 짊어진채 ‘출혈경쟁’도 마다않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이 소기업인 광고물 제작업체, 인테리어 홈쇼핑업계, 소형 공작기계 제작업체의 상황은 그야말로 심각하다. 이에 본지는 이들 업계를 중심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나가는 소기업의 현장상황을 취재해 상·하편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주>

고질적인 거래행태와 인건비 등 비용부담 증가로 소기업들이 힘겨운 생존경쟁을 벌이고있다. 사진은 한 공작기계 제작업체의 작업장 모습이다.
고질적인 거래행태와 인건비 등 비용부담 증가로 소기업들이 힘겨운 생존경쟁을 벌이고있다. 사진은 한 공작기계 제작업체의 작업장 모습이다.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늘 소기업들을 괴롭히는 것은 부조리한 거래 관행과 불합리한 비용 부담이다. 특히 ‘코로나19’로 형편이 더 어려워진 요즘, 이는 소기업들의 고통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최저가 중심의 입찰방식, 크레인이나 고가 사다리차(스카이) 차량 임대료, 프리랜서 일용직 노동자들의 고액 임금과 퇴직금, 발주업체의 ‘갑질’ 등이 그런 것들이다. 특히 대부분 소기업 수준인 광고물 제작업체, 인테리어․홈조명업계, 절곡기․재단기 등 소형 공작기계 제작업체 등의 고통이 크다. 이들은 애써 일감을 수주해도 시공비나 생산원가, 인건비 등을 제하고 나면 오히려 적자가 나는 구조가 일반화되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도 없고, 법이나 제도 개선도 요원한 일이다. ‘코로나 19’마저 덮치면서 요즘 이들 소기업들은 이제 하루하루가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다.

“최저가 입찰로 ‘제로 마진’ 감수”

적자 불구 “직원들 놀리지 않기 위해 수주”

흔히 대기업이나 기관․단체가 주관하는 공개입찰은 으레 최저가 낙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그나마 최저가입찰을 지양하는 정책을 펴곤 있지만, 민간 베이스에선 여전히 이같은 ‘악습’이 관행으로 통용되고 있다.

최저가입찰에선 응찰 업체들이 앞다퉈 과도하게 낮은 금액을 써내다보니, 결국은 원가를 보전하기에도 힘든 수준의 저가 낙찰이 이뤄지곤 한다. 결국 낙찰된 금액으로 납품, 시공한 후에 따져보면 마진은 커녕 적자를 보기 일쑤다.

고양시의 한 경관조명 부품 제작업체 대표 A씨는 “재료비와 시공비, 스카이 차(사다리차) 임대료, 작업자 일당, 그리고 납품일 동안 직원들의 임금 등을 계산하고 나면 늘 ‘밑지는 장사’”라고 했다. 특히 전체 생산원가의 절반이 인건비라는 이 업체의 경우 최근엔 아예 제작보단 1차 벤더나 기획사 형태로 업종을 바꿔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최저가 입찰은 신규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업체들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업체들일수록 아예 ‘밑지고 들어가는’, 막무가내식의 저가로 응찰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같은 제품이나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거듭될수록 물가인상을 반영하긴 커녕, 오히려 전년, 전전년도보다 낙찰가가 떨어지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많은 업체들은 적자를 감수하고, 그저 ‘공장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입찰에 참여하곤 한다. 원가 이하든, 적자든 상관없이 그저 일감이 있고, 직원들을 놀리지 않기 위해서 수주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얼마나 가겠느냐. 결국은 공장 문을 닫거나, 전업할 수 밖에 없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게 앞서 A씨의 말이다.

매년 시행하는 지자체나 관공서의 간판디자인 사업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조달청 내규가 일단 최저가 입찰을 지양하도록 권장하곤 있으나, 일선 지자체 입찰 심사 과정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최저가 중심의 공개입찰이 아닌, 공모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날로 높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사업을 공개입찰로 진행하면 업체 간 가격경쟁이 붙어 당연히 디자인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기존의 간판개선사업 모델을 모방함으로써, 차별성도 없는 결과가 나온다”는 지적이다.

이러다보니 업체들은 기왕의 간판 디자인을 보고 베끼기에 급급, 결국 거리마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간판을 정비, 특색있는 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가 퇴색되곤 한다. 획일성을 탈피하기 위한 간판사업이 되레 획일화를 부추기는 꼴이란 지적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거리의 디자인을 수십년 동안 유지한다고 생각하고, 이제라도 디자인에 중점을 둘 수 있도록 디자인 공모형 사업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도 이미 간판 및 공공디자인 사업 추진은 전문적인 창작의도가 필요한만큼 디자인 공모형식인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추진토록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일선 공무원들은 특혜 시비 등을 우려, 이를 꺼리고 최저가 입찰만을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체적으로 디자인 심사 능력을 키우고, 심사과정에서 디자인 관련 채점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그런 시비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면서 “특히 민간 전문가들을 최대한 활용, 투명성을 높이면 각종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개선을 촉구했다.

원청업체의 고질적인 단가 후려치기

가뜩이나 장기 불황에 시달려온 소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마저 겹치면서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이런 어려움을 가장 실감나게 겪고 있다는 종합광고제작업체인 B사(경기도 남양주시)의 C대표는 특히 ‘원청업체의 단가 후려치기’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주로 대기업들인 원청업체들은 최저가 낙찰을 통해 사실상 가격 후려치기를 관행처럼 해오고 있다. 결국 이는 업계 내부의 지나친 ‘덤핑’ 경쟁을 조장하고, 낙찰을 위해 엄청난 출혈도 감수하는 ‘을’들 간의 전쟁을 유발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 입찰 참여자들은 다음 해엔 응찰을 포기하는 대신, 신규 업체가 새로 입찰에 참여해 전년도보다 더 크게 낮아진 가격으로 낙찰되곤 한다.

이는 결국 해가 거듭될수록 매년 입찰가를 낮추는 결과가 되고, 업계로선 그 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최저가 낙찰은 낮은 가격에 맞춘 불량한 품질을 조장하고, 제품에 대한 불신을 유발하면서, 업계 전체의 신뢰성을 훼손한다.

낙찰가 공개도 문제가 있다. 애초 투명하고 공정한 입찰 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원청업체들이 ‘을’들 간의 경쟁을 통해 입찰가를 해마다 낮추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 번 입찰에는 그 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응찰하는 업체들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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